15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마녀사냥은 16세기 말에서 17세기가 전성기였다. 초기 마녀사냥은 희생자 수도 적었거니와 종교재판소가 마녀사냥을 주관하였기에 그 파급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 세속법정이 마녀사냥을 주도하면서 중세 유럽은 마녀사냥이라는 광기에 휩싸이게 된다. 그렇지만 마녀에 대한 증오와 광기의 시대도 18세기 르네상스와 함께 자취를 감췄다. 18세기의 이성과 과학이 이 광기를 잠재운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에는 새로운 마녀사냥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마녀사냥 가운데 하나가 바로 ‘김치녀’ 신드롬이다. 이 ‘김치녀’는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모든 것을 의지하며 그 모든 것이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우리는 SNS상에서 ‘김치녀’에 관한 에피소드를 종종 볼 수 있다. ‘김치녀’ 에피소드를 읽는다면 같은 여자라도 화가 날 만큼 황당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이런 황당한 이야기가 하나, 둘 쌓이기 시작하면 ‘김치녀’에 대한 증오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증오심이 만들어낸 ‘김치녀’ 신드롬에 한국여성들도 부담을 느끼고 자신이 ‘김치녀’로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휩싸이고 있다. 마치 중세 유럽에서 마녀로 몰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급기야 올해 1월 달에는 고려대에서 ‘김치녀’ 신드롬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증오는 전염성이 극도로 강한 전염병과 같은 존재이다. 증오로 시작된 ‘김치녀’ 신드롬은 남성들 사이에서만 퍼지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여성들에게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만약 이 상황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양성은 증오를 넘어 혐오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문제의 해결책을 남성이나 여성 한쪽으로 전가시킬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미 남성과 여성 둘 다 이 문제에 당사자이자 해결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부터라도 남성과 여성이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생각을 어떻게 다르게 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가 금성에 왔다 한들 그들이 살고 있는 여기는 지구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만이 증오를 잠재울 이시대의 이성이자 과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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