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라는 의미의 “passion”이라는 말은 라틴어 pati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to suffer, endure”의 뜻으로 고통을 겪었다, 견디어 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단어를 더 추적해 보면, “sufferings of Christ on the Cross”의 의미가 나타난다. “참고 견디는 게 왜 열정이라는 것이지?”라는 역설 때문에 추적했던 어원은 그 출발점을 알게 되면서 역설이 깊은 깨달음으로 변모했다. 후에, 열정은 중세의 자유 연애의 분위기에 취해 육체적인 욕정의 의미를 획득하게 되지만 사실 그 아이덴티티는 고통과 인내이다. 
 
  열정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처음 대했을 때를 떠올린다. 이 단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고통과 인내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실은 지금도 진실되게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없다. 열정은 눈부신 젊음의 전유물이라고 여겼고, 열정이라는 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산다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럴싸한 자기 기만이라고도 생각했다. 사실, 열정을 가지자라는 말에 대해 다소 불편했던 것 같다. 이른바 메인스트림의 거대한 흐름을 획책하는 이데올로기라고까지 생각했던 기억도 난다. 고통을 합리화하는 이 ㅅ회의 강요라고 여겼다. 
 
  지금도 패션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그 심연을 다 측량할 수 없지만, 열정은 아픔과 고통을 수반하고, 필연적으로 견디어 낸다는 통과 의례를 거쳐야 비로소 의미가 완성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다. 그 근원이 아픔이기 때문에 개인의 부족함으로 인한 암중모색의 희미한 깨달음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열정은 아픔을 자양분으로 삼고, 뿌리에 인내를 통해서 강한 생명력을 부여될 때 의미가 있다는 것. 아픔 없이, 인내 없이 찰나의 충동만으로 열정이라고 착각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어딘가를 괴로이 묵묵히 지나가면서, 잠깐 아픈 숨을 돌리면서 열정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있다. 그것이 예리한 깨달음으로 찾아올 때가 있지 않는가. 인내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열정의 또 다른 모습이다. 아픔은 때로는 나에게 강한 힘으로 거듭나서 살아가는 동력이 되어 준다. 고통과 인내가 열정으로 거듭날 때, 그 지극한 쾌를 느끼는 것이 인생의 쾌미라고 믿는다. 
 
  아파서 부족함을 느끼고, 인내에서 자괴감을 느꼈다면 그 자신에게 열정이라는 단어는 큰 축복이다. 그래서 젊음의 상징이라고 여겼던 열정은, 대학이라는 시간과 공간이 더해지면서 그 의미가 더욱 생생하게, 찬연하게 빛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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