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정보시스템공학과 조문수(산업정보·79)교수
 

  오는 10일(금)은 개교 117주년이자 숭실이 서울에서 재건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서울에서 재건됐고, 현재도 서울에 위치하고 있지만 우리 숭실의 뿌리는 평양에 있다.평양 을 그리워하지만 찾아갈 수 없고 사진으로만 봐야하는 숭실의 역사는 아픈 분단의 역사와도 비슷하다. 이 아픔에 공감하며 평양에 수없이 방문해 본교와 평양의 교류를 위해 힘써온 산업정보시스템공학과 조문수(산업정보·79)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서울 숭실과 평양을 잇다

 

  평양에 가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몇 번이나 다녀오셨나요?

  2007년도에 본교 학생처장을 역임했는데, 그 해 3월에 북한청소년축구단 선수들이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본교 축구부원들과 제주도에서 친선경기를 갖도록 했어요. 경기가 끝나고 서로 유니폼도 바꿔 입고 경기 승패에 관계없이 정말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요. 그런데 당시에는 이 경기가 꽤 큰 이슈가 됐습니다. 북한 사람들과 축구로 교류한 대학은 우리가 최초였거든요.

  이 축구 시합이 본교와 북한과의 교류의 계기가 됐고, 또 제가 평양을 방문하게 된 시작이기도 합니다. 축구 시합이 있던 날 경기가 끝나고 축구단 단장이 저를 초청했어요. 이 초청을 받아 갔더니 단장이 “평양에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을 기념해 설립한 ‘김형직사범대학’이있는데 이 학교와 숭실대가 교류를 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하더라고요. 사실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숭실중학교 출신이라 우리대학
은 북한사람들에게서 최고의 대학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해요. 아무튼 이 제안을 수락해 김형직사범대학과 문화교류와 체육교류를 하려고 수없이 평양에 다녔죠. 공식적으로 평양에 다녀온 것은 3번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꽤 많이 다녀왔습니다.

  김형직사범대학의 분위기는 어땠고 본교와의 교류는 어떻게 이뤄졌나요?

  직사범대학은 우리대학과 학과 규모가 슷해요. 학교 부지는 더 넓고요. 교내 분위기는 장히 좋았어요. 북한의 가장 권위 있는 사범교육기관으로 사범대학과 교원대학의 교수를 양성합니다. 김일성혁명 역사학부를 비롯한 18개학부와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현직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3년제 통신학부가 있어요. 전국의 사범대학 중에서 유일하게 교육학부가 설치된 곳이죠. 현재 평양시 동대원 구역에 소재하고 있어요. 한 가지 아셔야 될 게 있는데, 북한도 한국만큼이나 교육열이 상당합니다. 특히 IT나 공과대학 계열의 학문 교육 수준은 우리나라의 90년대와 비슷한 수준이에요.

  당시 김형직사범대학에서는 소프트웨어 경진대회, 고구려 역사 재조명, 예체능계 교류, 한방재료 교류 등을 제안했어요. 예를 들어 평양의 한방병원인 고려원과의 교류를 위해 우리가 숭실한방병원을 평양에 지어주겠다고 2008년에 얘기했어요. 그리고 이를 위해 평양시 장천동에 건물 설립을 위한 부지를 샀습니다. 여기에 짓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남북교류가 많이 줄고 말았죠. 그때부터 현재까지도 어려운 실정이 이어지고 있어 많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교류가 없는 건가요? 더해 평양숭실한방병원의 건립은 가능할까요?

  지금은 과거처럼 북한에 직접 들어가기는 힘들어요. 그래서 요즘은 중국에서 만나 서로 우애를 돈독히 하고 있습니다. 평양숭실한방병원의 건립은 희망적으로 보고 있어요. 계약 승인을 그당시 고위직 사람이 했기 때문에 그 계약은 계속될 겁니다. 제가 퇴임하려면 10년 정도 남았는데 퇴임 전까지는 건립될 수 있는 기초 작업을 할거예요.

  평양에 방문하시면서 위험하거나 힘들었던 점은 없으셨나요?

  평양에서는 극빈 대우를 받으면서 지냈어요. 김일성의 아버지가 다녔던 학교의 선생님이라며 최고의 대우를 해줬죠. 그런데 같이 갔던 사람들이 김일성의 노래가 나올 때 춤을 추거나 마이크를 돌리는 등 행동을 해서 분위기가 싸해지진 적이 있었죠.

  그리고 너무 추웠어요. 난방이 잘 안 됐기 때문에 가지고 간 옷을 다 껴입어도 추워서 잠을 못 잘 정도였어요. 심지어 호텔의 엘리베이터도 얼어붙어서 작동이 안 되더라고요. 그때 북한의 전력난이 시급하다는 걸 실감하게 됐죠.

  게다가 북한주민들을 보기가 안쓰럽고 힘들더라고요. 주민들의 의식주 모두에 문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먹는 문제가 가장 심각해요. 우리가 TV에서 보는 것보다 더 안 좋아요. 정말 불쌍하고 보기 안쓰럽더라고요.

 

  통일, 이제는 우리 모두가 준비해야할 때

 

  통일이 될 경우 생길 문제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통일이 되면 문제점이 많이 생기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해요. 첫째는 남한 사람들이 북한 주민을 바라보는 윤리적 책임의식입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도 남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현재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을 우리나라 주민들의 삶의 질 수준으로 끌어올려줘야 한다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는 이를 위한 물류기반시스템을 구축해놔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우리가 생필품을 나눠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죠. 예를 들어서 제주도에서 나는 감귤을 원산 사람들이 먹어본 적이 있겠어요? 당연히 없겠죠. 그렇기에 이것을 먹게 해줄 수 있는 물류기반 시스템, 도로, 항만, 철도 등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거죠.

  통일을 준비하는 숭실인의 올바른 자세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요즘 학생들이 통일에 대해 생각을 많이 안하는 것 같아요.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우리대학은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여러 대학교들을 돌아다녀 봤지만 우리 대학만큼 통일에 대해 많은 교육을 하는 학교도 없기 때문이죠. 이 교육을 받고 있는 숭실인이라면 통일을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 전공이 어떻게 통일에 보탬이 될 수 있을까라는 마인드를 갖는 것부터 필요한 거죠.

  더해 지금 현재 총장님이 하고 계시는 통일교육은 당연히 계속돼야 하고, 과거처럼 북한의 대학들과의 교류도 꼭 필요합니다. 특히 김형직사범대학과의 교류는 계속 이어져야 해요. 또 평양숭실한방병원의 설립으로 다른 대학보다 우리가 앞서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서울 숭실 60주년을 맞이한 우리의 사명이고, 숭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숭실의 미래는 우리에게 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제 경험에 비춰보면 시간 활용이 정말 중요합니다. 학생들에게 제일 먼저 얘기해주고 싶어요. "시간을 아껴라, 잠자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시간을 잘 활용해라." 라고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우리학교의 역사가 우리나라의 역사와 유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숭실인은 역사적 사명과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숭실의 미래는 여러분입니다. 이미 우리는 최초의 대학입니다. 이제는 최고의 대학을목표로 해야 합니다. 최고의 대학이라는 것의 가치를 우리가 증명해야 합니다. 그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이냐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학교는 대한민국 최초의 4년제 대학입니다. 그리고 자진 폐교를 할 정도로 우리학교는 민족주의적인 학교였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것은 숭실인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자부심입니다. 충분한 자랑거리고요. 하나님 앞에 아름답고 깨끗한 학교이고요. 사실 이것은 시간이 지나야 알아요. 학교 다닐 때는 잘 모릅니다. 저도 그랬고 지금 재학생들도 그럴 겁니다. 그런데 졸업할 때 되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졸업할 겁니다. 하나님이정해주신 운명이었고, 자부심을 가질 충분한 학교라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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