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알려주던 유수현 교수(사회사업·71)가 지난 학기에 숭실대학교를 떠 났다. 사회복지, 오로지 그 한 길만을 걸으며 주는 삶의 행복을 실천했던 그가 떠나가는 졸업생들과 함께 추억과 위로를 나누고자 한다. 청춘이여, 졸업은 끝이 아니라 항해의 시작이다. 거친 파도도 거세게 헤엄쳐나가라.(편집자)

 

 학부생과 대학원생, 그리고 교수로서 숭실에 계셨습니다. 떠나는 소회가 각별할 거라 생각이 드는데요.지금 소회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퇴직해 숭실을 떠난다는 사실이 아직 실감나 지 않아요. 월급을 안 받을 뿐, 학교가 저를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나와서 도울 것이라는 태도 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에요. 사실 여러 대학에 서 교수를 지냈지만 역시 숭실에 가장 애정이 가 요. 숭실에는 제 동문들과 후배들이 있거든요. 제게 숭실은 퇴직으로 인연을 끊을 수 있는 직장이 아닌 삶의 일부이자 늘 함께하는 공동체입니다.

 

 숭실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내셨습니다. 숭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오셨을 텐데, 이 과정에서 숭 실의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이를 말씀해주신다면?

 좋은 점은 숭실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유산이라고 생각해요. 숭실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학교의 이념을 꿋꿋이 지켜낸 절개있는 대학입니다. 타대학처럼 보결생을 받는다던가, 부적절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해서 커진 학교가 아니예요. 구성원들은 역사에 정직한 숭실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아쉬운 점은 한국 사회의 학벌주의 때문에 숭실의 가치가 저평가 되는 것 입니다. 저도 살아오면서 몇 번 경험했지만, 숭실 인들이 학벌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사회에서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앞 으로 졸업생들이 각 분야에서 열심히 내공을 쌓아 숭실의 가치를 높이길 바랍니다.

 

 교수님의 대학시절은 어떠셨나요? 대학생활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크리스찬이라 학교에서 채플 드리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뚜렷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채플을 통해 상당히 많은 감동을 받았던 것 같아요. 합창단이 찬송가를 부를 때면 이에 푹 빠져서 듣곤 했죠. 인상적이었던 교수님들도 있어요. 처음으로 사회사업학과 학과장을 지냈셨던 조성경 교수님이 대표적이에요. 학생들의 마음을 다 이해해 주시며 인간적으로 대해주셨던 분이에요. 삶 자체가 모범되었던 분이죠. 그런데 60살이 채 되기 도 전에 당뇨로 돌아가셔서 많이 안타까워요. 제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셨던 그런 분을 만난 것은 제게 상당히 가치있고 큰 행운이었어요.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가장 보람찬 적은 언제였나요?

 제자들이 잘 되는 걸 볼 때에요. 가르친 제자 들이 어떤 직업이든 갖든 사회의 각자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이 자랑스럽고 보람 차요. 장인(匠人)이 자신이 만든 물건이 많은 사 람들의 사랑을 받으면 뿌듯한 것처럼요. 그 제자가 저한테 잘해주던, 못해주던 그건 상관없어요. 그냥 잘 성장해나가는 모습만 보여줘도 좋습니다.

 

 외국학교에서도 교수를 지내셨는데, 외국 학생 들과 한국 학생들의 차이점이 있다면요?

 외국 학생들은 한국 학생들에 비해 동기가 뚜렷해요. 한국 학생들은 대학이나 학과를 정할 때 입학점수에 맞추잖아요. 그런데 외국은 그렇지 않아요. 자신의 진로를 생각해서 학과를 선택하죠. 그러다 보니 입학 및 학습동기가 확실하고, 공부도 자율적으로 잘 합니다. 한국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오면 ‘이제 쉬어야지.’라고 생각하잖아 요? 근데 외국 학생들은 대학 입학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해 더 열심히 노력해요.

 

 학생상담실장으로 3년을 보내셨어요. 기억남는 학생의 고민이 있나요?

 학생상담실장을 하던 시절이 36살 즈음이었어요. 교수가 된 지 얼마 안됐을 때고 젊어서 열정이 넘칠 때였죠. 하루는 귀가 불편한 학생이 찾아왔어요. 충청북도의 한 시골에 살았는데 집 안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병원비 등의 문제로 고 민을 하고 있었어요. 마침 제가 교수가 되기 전 병원에서 근무했어요. 그래서 이 경험을 활용해 병원에 데리고 가 치료도 받게 해주고 치료 후에 도 그 친구가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여러 방면 으로 도왔어요. 그 학생 집에 가정방문도 갔었는데, 학생 아버지가 고맙다고 메밀가루로 묵밥을 해줘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 학생은 졸업을 무사히 했고 지금은 어느 사회복지기관 의 기관장이 됐어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학생들이 많아요.

 꿈이라는 것은 멀리 보는 거예요. 단순히 ‘어떤 직업을 택할까’가 아닌 ‘장차 내가 어느 것에 전념해 살 것인가.’, 그것이 바로 꿈입니다. 정해 놓지 않고 가야할 길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에요. 어떻게 살다가 죽고 싶은지를 정해놓고 살다보면 중간 중간 어느 길을 통과해야 할지, 또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올 거예요. 조급해하지도, 또 좌절하지도 말고 멀리 내다보세요.

 

 개인주의가 심각해진 요즘, 대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올바른 사회인이 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과 대면하는 시간을 갖도록 노력해야 해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사회성이 향상되거든요. 자신 의 할 일이나 공부만 하고, 남는 시간엔 스마트폰만 하다보면 정서적으로 외로워질 수 있어요. 그러니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자신의 사회적 기능과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모임에 자주 참여 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생들이니 종교활동이나 동아리활동 등이 괜찮겠네요.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나 위로의 말씀이 있을까요?

 대학 졸업은 사회라는 바다에서의 첫 항해일지도 몰라요. 항해를 하다보면 이 과정에서 물결 이 잔잔할 때도 파도가 거세게 칠 때도 있을 거 에요. 즉,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목표지점까지 견뎌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뜻을 쉽게 굽히거나 또 는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라는 거에요. 요즘 학생들은 취업을 해도 직장 상사나 부당한 일 등 을 견디지 못해 금방 그만두고 고요한 곳을 찾으려 해요. 그런데 어디를 가든지 고요하기만 한 곳은 없어요. 처음 회사에 출근을 했는데 그 곳의 사람들이 이해가 안된다면 일단 가만히 기 다려보세요. 이해가 안 될 때마다 메모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어느샌가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던 상황이나 보 지못했던 환경들이 보일 거예요. 그때 다시 메모한 것을 보세요. 이때까지도 메모했던 내용 들이 이해가 안되면 그만두세요. 나무도 뿌리가 완벽히 내려서 뽑히지 않을 때까지 바람에 맞서 지 않고 가만히 숙이고만 있습니다. 자신의 뿌 리가 튼튼히 자리잡아 왠만한 바람에도 흔들리 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그때 옳지 않다고 생각 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세요. 기다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교수님의 목표는 무엇이세요?

 제가 앞으로 얼마나 살지는 모르겠지만 사는 날까지 하나님이 제게 주신 능력을 발휘해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강사라도 괜찮으니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고, 또 선교나 봉사 등 제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 힘이 닿을 때까 지 활동할 겁니다. 쓸 수 있는 것도 다 쓰고 죽으 려고 해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한테도 “나 죽으면 장기 다 기증해라. 그리고 태워버려라” 라고 얘기하곤 합니다. 지금부터 얘기해야 죽을 때 주저 없이 할 것 같아서요. 누군가 필요하다면 눈 이든 장기든 피부든 다 주고 하늘나라에 가고 싶어요. 그게 제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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