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딕양식 최고의 걸작 밀라노 대성당이야말로 도시를 상징하는 명품이다.
  도시의 한 가운데를 버티고 있는 밀라노 중앙역은 그 위세가 대단하다. 이 곳이 궁전도 박물관도 아니라는 사실을 내 머리는 잠시 받아들이지 않는다. 눈을 통해 전달된 모습을 뇌에서 빠르게 해독하지 못하는 순간을 ‘멍하다’ 라는 말로 표현해도 되는 것일까. 독재자 무솔리니는 위풍당당한 건축물로 파시스트 정권의 권위를 나타내려했다. 독재자의 야욕(野慾)으로 탄생한 이 거대한 기차역에서 형형색색 갖가지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여행의 시작과 마무리를 연출한다. 독재자는 악명(惡名)을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 곳에서 새로운 에피소드를 펼쳐간다. 세계 3대 패션 도시의 기차역은 달라도 뭔가 다르다.
 

  베르디와 푸치니의 작품이 초연된 ‘극장의 극장’ 스칼라 극장, 라파엘로의 진품이 전시된 브레라 미술관(Pinacoteca di Brera), 고딕 양식의 최고봉이며 나폴레옹 황제가 완성시켰다는 밀라노 대성당. 가 볼 곳을 제대로 열거하는 데만도 꽤 긴 시간이 필요한 밀라노지만 나는 이 도시를 ‘한개의 가방으로 들어갔다가 두 개의 가방으로 나오는 패션 시티’ 라고 규정한 적이 있다. 도시 자체를 문화재라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나의 얄팍하기 그지없는 표현은 참으로 세속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명품으로 대접받는 브랜드를 반값에 살 수 있다는 행복한 현실에 직면하면 누구나가 비슷해질 것도 같다. 바겐세일 시즌이라면 명품 브랜드를 3분의 1, 4분의 1 가격으로 흔히 말하는 ‘득템’ 할 수도 있다. 이탈리아어로 ‘Saldi’ 라는 말이 영어의 Sale과 같은 뜻임을 알고 나서부터는 구입한 물건을 양손 가득 들고 설쳐댔던 시절이 참으로 창피하다. 지금은 명품 쇼핑에 아무런 관심도 없지만십 여 년 전에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메뚜기도 한 철’ 이라는 속담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니다.
 

  명품 쇼핑에 정신이 팔려 여러 매장을 넘나들다보니 피곤도 하고 목도 말라 대성당 근처의 노천카페에서 커피한 잔을 주문하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중년의 이탈리아 아저씨가 양손에 주렁주렁 달린 쇼핑백을 보고 완전하지 않은 영어로 말을 건넨다. “물건을 많이 샀구먼. 많이 산 것을 보니 중국인 아니면 한국인이겠네. 이탈리아 사람들은 세일 기간 중이라도 그렇게 많은 물건을 한꺼번에 사는 경우는 드문데 말이야.” 중년 남성의 뜬금없는 몇 마디는 말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관광지 주변에서 여행객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은 아닌가라는 의심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강렬하게 마음을 강타한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다는 이유만으로 마구 사버린 충동구매에 대한 작은 질타.
 

  숙소로 돌아오는 길, 이상하리만치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옷은 명품이 아니었다. 같은 스타일이 하나도 없을뿐이다. 이탈리아 패션의 중심 밀라노에서는 다 명품만 입는 줄 알았는데, 그들이 만들어 내는 패션 스타일이란명품의 사치스러움이 아닌 자신들만의 개성이었다. 치장하지 않아도 멋있는 도시 밀라노를 느낀다. 숙소에 들어와 여행 가방을 가득 채운 소위 ‘명품’ 이라는 것들을 바라보다 밀라노의 진정한 명품 장소를 찾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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