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와 푸치니의 작품이 초연된 ‘극장의 극장’ 스칼라 극장, 라파엘로의 진품이 전시된 브레라 미술관(Pinacoteca di Brera), 고딕 양식의 최고봉이며 나폴레옹 황제가 완성시켰다는 밀라노 대성당. 가 볼 곳을 제대로 열거하는 데만도 꽤 긴 시간이 필요한 밀라노지만 나는 이 도시를 ‘한개의 가방으로 들어갔다가 두 개의 가방으로 나오는 패션 시티’ 라고 규정한 적이 있다. 도시 자체를 문화재라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나의 얄팍하기 그지없는 표현은 참으로 세속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명품으로 대접받는 브랜드를 반값에 살 수 있다는 행복한 현실에 직면하면 누구나가 비슷해질 것도 같다. 바겐세일 시즌이라면 명품 브랜드를 3분의 1, 4분의 1 가격으로 흔히 말하는 ‘득템’ 할 수도 있다. 이탈리아어로 ‘Saldi’ 라는 말이 영어의 Sale과 같은 뜻임을 알고 나서부터는 구입한 물건을 양손 가득 들고 설쳐댔던 시절이 참으로 창피하다. 지금은 명품 쇼핑에 아무런 관심도 없지만십 여 년 전에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메뚜기도 한 철’ 이라는 속담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니다.
명품 쇼핑에 정신이 팔려 여러 매장을 넘나들다보니 피곤도 하고 목도 말라 대성당 근처의 노천카페에서 커피한 잔을 주문하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중년의 이탈리아 아저씨가 양손에 주렁주렁 달린 쇼핑백을 보고 완전하지 않은 영어로 말을 건넨다. “물건을 많이 샀구먼. 많이 산 것을 보니 중국인 아니면 한국인이겠네. 이탈리아 사람들은 세일 기간 중이라도 그렇게 많은 물건을 한꺼번에 사는 경우는 드문데 말이야.” 중년 남성의 뜬금없는 몇 마디는 말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관광지 주변에서 여행객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은 아닌가라는 의심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강렬하게 마음을 강타한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다는 이유만으로 마구 사버린 충동구매에 대한 작은 질타.
숙소로 돌아오는 길, 이상하리만치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옷은 명품이 아니었다. 같은 스타일이 하나도 없을뿐이다. 이탈리아 패션의 중심 밀라노에서는 다 명품만 입는 줄 알았는데, 그들이 만들어 내는 패션 스타일이란명품의 사치스러움이 아닌 자신들만의 개성이었다. 치장하지 않아도 멋있는 도시 밀라노를 느낀다. 숙소에 들어와 여행 가방을 가득 채운 소위 ‘명품’ 이라는 것들을 바라보다 밀라노의 진정한 명품 장소를 찾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