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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을 일컬어 흔히 ‘신사(Gentleman)’라고 부른다. 이 칭호는 신중하고 자제하는 태도, 세련된 언어구사, 상대를 배려하는 세심한 예의범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점잖아 보이는 영국인들을 흔히 ‘황소’로 비유해 왔다. 아일랜드 출신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스>에서 믿을 수 없는 것으로 ‘황소의 뿔’과 ‘색슨인의 미소’를 손꼽았다. 신사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왜 황소인가? 이 두 비유는 서로 상충되는 것 같지만 영국인들을 실제로 겪어보면 본질을 꿰뚫어 보는 비유로 수긍이 간다.

  우선 영국인들은 대단히 실리적이며 물질적이다. 여기서 ‘물질적’이라는 말은 물질에 대한 욕망을 뜻하기 보다는 물질의 불가피성을 결코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저돌적인 기질을 지녔으되 쉽게 개인적 감정을 표출하거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절제력, 실리를 추구하는 실속 있는 판단력과 같은 견고함이 ‘황소’같은 민족적 기질로 비유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색슨의 스마일’이 암시하는 친절하고 세련된 매너는 ‘황소’같은 내면에 대한 겉포장에 불과한 것인가? 이들에게서 기만당한 느낌이 들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영국인과의 대인관계에서의 최고의 미덕은 신뢰임을 알게 된다. 결국 ‘색슨의 스마일’은 그들의 교육과 사회적 훈련, 민족적 자긍심이 빚어낸 높은 의식수준의 소산물이다.

  수준 높은 정신은 단기간에 이룰 수가 없으며 긴 역사 속에서 터득한 삶에 대한 지혜가 국민적 정서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이 바탕에는 정치 경제면에서 국가적 저력이 뒷받침이 되었다. 르네상스 시기부터 해상을 장악하며 세계를 통솔했던 영국은 과학, 경제학, 인문학 등 다양한 학문을 발전시킬 수 있었고, 이러한 기초학문을 바탕으로 영국인 고유의 가치와 사고체계를 이루어냈다. 절약과 절제가 보편화되어있는 영국인들의 실속 있는 생활문화는 소박하지만 결코 누추하지는 않다. 높은 의식 수준과 같은 내면이 갖추어져 있는데 외부치장을 할 필요는 없는 법이다. 유학시절 참석했던 이들의 파티는 술을 나누며 즐기는 ‘말잔치’였다. 기지와 해학 넘치는 대화들을 들으며 이들이 문호 셰익스피어의 후손들임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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