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마이클 페이(Michael Fay)라는 철없는 미국 청소년이 민간인의자동차와 공공기물을 훼손한 혐의로 싱가포르 경찰에게 체포되었고법원은 태형(笞刑)을 선고하였다미국 정부는 자국민 보호와 인권을 내세우며 태형집행을 중지하라는 정치적 압력을 행사했다그러나 싱가포르 정부는 법 적용의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됨을 강조하며 법원의 선고대로 집행하였다스스로 세계의 경찰국가임을 자처하는 미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가 거의 없음을 고려할 때이 태형집행은 미미한 사회적 일탈행위로 시작되었지만 1990년대를 풍미한 큰 외교적 사건으로 기록되었다전 세계 사람들은 싱가포르의 결정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았지만한편으로는 면적이 서울시만한 이 작은 도시국가에 경의(敬意)를 표하였다.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으로부터 탈퇴하여 완전한 독립을 이룬 싱가포르는 리콴유(李光耀수상의 강력한 영도력(領導力)을 바탕으로 1인당 GDP 56,000불에 달하는 부자나라가 되었다사람의 행복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겠지만 자연 자원은커녕 마실 물조차 부족했던 다민족국가의 현실에서 지도자의 방향성과 리더십은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싱가포르에 중국인말레이인인도인아랍인그리고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존재하지만 확고하고 공정한 ‘공존의 룰이 있다는 것은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얼마 전 타계하여 고인(故人)이 된 리콴유 수상은 국민 전체의 애도 속에서 ‘싱가포르의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다길에 침이나 껌을 뱉는 행위조차 엄벌에 처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공무원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고 모든 일에는 원칙이 있고 그 원칙을 지킴으로써 국가가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그의 철학은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오차드 로드(Orchard Road)의 럭셔리함전 세계 모든 글로벌 회사의 지사들이 한 곳에 모인 곳 같은 셴톤 웨이(Shenton Way), 차이나타운과 리틀인디아의 문화적 다양성은 싱가포르의 상징인 멀라이언(Merlion)과 함께 이 작은 도시국가를 더 크게 만든다멀라이언이 머리는 사자이고 몸은 물고기인 이유는 이질적인 문화의 융합과 각기 다른 상황에서의 순발력을 암시하는 듯하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주변의 이웃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니 내가 죽으면 내가 살던 집을 허물어라” 라는 유언을 남기고 간 위대한 지도자의 숨결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에게 싱가포르 여행을 권한다. 국가가 정한 원칙이란 함부로 여겨져서는 안 되며, 그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국가 경영철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배울 것은 눈부신 경제발전의 테크닉이 아니라, 공정하게 적용되는 원칙은 경쟁력이며 그런 경쟁력은 지도자의 의지와 국민 개개인의 양보 속에서 이룩될 수 있다는 신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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