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수업을 듣던 날이었다. 그 날의 주제는 데카르트였고, 발표자는 나였다. 철저히 이원론자인 그가 ‘송과선’이라 는 개념을 내세우다니 황당하다고 비판을 했는데, 교수님께서 송과선은 오히려 지금 주목을 받는 개념이라고 하면 서, 뇌과학 분야에 비슷한 설명이 있다고 덧붙이셨다. 그 날 이후 나는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철학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 말씀 덕분인지, 내 관심은 자연스레 뇌과학에 쏠렸고, 그 분야를 전혀 모르는 내가 읽을 만한 책을 찾던 중 우연히 「커넥톰」을 발견하게 되었다.

  글쓴이는 ‘당신은 당신의 커넥톰이다.’라는 명제를 시작으로, 뉴런과 시냅스, 뇌의 작동방식과 구역 등을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각종 사례와 적절한 비유를 통해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 묘사해서 금방 이해가 된다. 정말 친절한 사람이다. 온갖 과학용어가 난무하고 철학자들 이름도 잔뜩 나오지만 책이 하나도 어렵지 않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주장에 한계가 있음을 밝히면서 앞으로 더 필요한 기술과 그 기술이 발전함으로써 생길 문제에 대해서도 나름의 입장을 말한다.

  나에게 정신이란 추상적 관념이었는데, 이 책을 읽은 후 과학으로도 영혼과 인간의 본질을 설명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물론 명쾌하지는 않다. 철학처럼 사고를 위한 초석을 제공할 뿐이다. 그러나 사실을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철학과 접근방식이 다르다는 점에서 분명히 가치가 있다. 개인적으로 철학도라면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특히 책의 마지막에 인간의 두뇌를 냉동 보존하는 사례가 나오는데, 자아정체성과 정신, 인간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보게 된다.

  최근 ‘영혼은 사실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두뇌를 영원히 보존한다고 해서, 지상에서 영생을 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이 물질이라면 우리가 말하는 인권은 무엇에 기인하는지 의문스럽다. 정답을 찾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책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관련서적을 찾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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