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이 원형(原型)이라면 세계 최고 높이의 부르즈 할리파 빌딩은 원형의 유전자를 가지고 발아(發芽)한 복제다. 복제된 것은 원형이 가진 아우라(Aura)를 내뿜지는 못하지만, 하느님에게 도전하는 인간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이 거대한 건축물에 내재된 듯하다. 높이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인류의 태동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인간은 계속해서 하늘로 많은 것을 띄워 올리기까지하며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물보다 휘발유 값이 훨씬 저렴한이 사막 도시에 존재하는 수많은 마천루 안에서 신이 선물해준 원유(原油) 의 막강한 힘을 실감한다. 밖은 백미터만 걸어도 온 몸이 땀으로 젖는데, 빌딩 안에서 사람들은 추위를 막기 위해 긴팔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아랍 에미리트 연합을 구성하는 하나의 도시 두바이,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지만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며 이 도시에 들어왔다. 아랍이 아무리 발전했어도 우리보다는 못할것이라는 자만과 아랍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은 두바이를 보는 순간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지만 아랍이 낙후되었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은 누가 만들어 내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중동(中東)’이라는 말 자체도 유럽에 있는 침략자의 방향과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 아닌가.

  불모지(不毛地)의 한 가운데에 설원(雪原)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실내스키장, 바다 위에 인공섬을 만들어 그 위에 세운 7성급 호텔 부르즈 알 아랍(Burj Al Arab), 완공되면 70만 명이나 살 수 있다는 해상도시 워터프런트,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며 도시의 큰 그림을 그리는 역량 있는 지도자들.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면 두바이는 매일 기적을 만들어 내는 도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기적을 만들어 내는 밑바닥에는 ‘두바이 드림’을 꿈꾸며 몰려든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 수는 150만 명으로 두바이 원주민 수인 30만 명의 다섯 배에 달한다. 그들의 피땀으로 세워진 도로 위에 오일머니로 수입된 자동차가 달리고 쇼핑센터 안은 ‘럭셔리 아이템’으로 채워지고 있음은 신의 공평함을 무색하게 만든다. 아랍 국가들에게 물 대신 기름을 준 것은 공평함이겠지만 기름이 만들어 낸 새로운 권력구조는 불공평함의 원조(元祖)가 아닐는지.

  두바이 크리크(Dubai Creek) 주변 에 즐비한 각국의 레스토랑에서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이 피워대는 시샤(Shisha)의 맛이 궁금해 음주가 가능한 레스토랑을 골라 와인과 함께 주문해보았다. 니코틴과 타르가 들어있지 않아 안전하다는 설명은 들었지만 몇 차례 흡입을 하니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고 손과 발에 힘이 쭉 빠졌다. 오래된 것은 바람에 날리는 모래알밖에 없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인간이 창조해낸 것 같은 이 곳이 낙원(樂園)으로 느껴졌다. 인간이 만들어 낸 낙원일지라도 이 정도면 쓸 만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마도 시샤의 힘이 아니었나 싶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