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에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해서 후에 환란이 없도록 조심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징비록」도 이에 비롯하여 저술됐다. 책은 1592년 임진왜란부터, 일본이 재차 쳐들어 온 1597년 정
유재란까지 조선의 전시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유성룡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도체찰사에 임명돼 군무를 총괄한다. 선조의 피난길에 왕을 보좌하고 임진왜란 말에는 훈련도감을 만들어 군비를 강화한다. 「징비록」은 전쟁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요한 임무를 도맡아 수행하던 유성룡이 썼기 때문에 상당히 입체적이고 사실적이다.
     보통 임진왜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이순신 장군이다. 한산도와 명량, 그리고 노량해전으로 이어지는 통쾌한 승리가 연상된다. 하지만 「징비록」을 읽으면서 승리보다는 전란 중에 참담했던 조선의 모습을 선명하게 접할 수 있었다. 왜군은 파죽지세로 한양을 점령하고,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른다. 왜적의 침략으로 농토는 폐허가 됐고, 백성의 십중팔구는굶어죽거나 전쟁터에서 죽었다. 계속되는 전쟁에 사람들은 심지어 시신을 가르고 잘라먹기까지 한다. 약 200여 년간 전쟁 없이 평화롭던 조선이 한순간에 지옥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이다.「징비록」은 이렇게 왜적에게 유린당하는 조선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징비록」은 비단 400여 년 전 조선에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적을 피해 피난 가던 선조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이 무서워 궁녀의 가마를 타고 아관파천 했던 고종의 모습이 똑 닮았다. 유성룡은 이 사건을 예견이라도 한 듯, 지난날의 과오들을 반복해서 적고 적으며 이 잘못들이 반복되는 것을 경계했다. 「징비록」의 교훈은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우리는 종종 과거의 잘못들을 잊거나 반복하곤 한다. 그러나 그것이 심각하다고 생각할땐 스스로 징계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를 징계함으로써 잘못된 과거를 개선해 나가야, 보다 나은 미래의 ‘나’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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