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부터 비엘리치카 소금광산까지
베를린 장벽부터 비엘리치카 소금광산까지
  • 조단비 객원기자
  • 승인 2015.09.07 04:50
  • 호수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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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명의 숭실인, 아름답고 비극적인 동유럽의 역사를 체험하다

 

   

 

   

 

   
 

  학생팀과 총학생회가 주관한 ‘2015학년도 하계 동유럽 교육기행’(이하 동유럽 기행)이 지난 7월 6일(월)부터 17일(금)까지 진행됐다. 동유럽 기행은 분단 후 통일을 이뤄낸 독일 역사를 배우고, 이외에도 다양한 동유럽 국가들의 문화 체험 및 폭넓은 견문 습득 등을 위해 지난해부터 지속돼 왔다. 이번 기행에는 36명의 재학생들과 4명의 교·직원들이 참가해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폴란드 △핀란드 5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 기행에 본 기자도 참여했다. 기자가 직접 체험한 동유럽 기행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독일 베를린 드레스덴

  아직 남아있는 베를린 장벽의 잔해 곳곳에 세계 각국에서 온사람들이 저마다의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다양한 언어로 쓰여있어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자유와 평화, 그리고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일 것이라 생각한다. 동쪽에서 바라보는 장벽에는 여러 화가들이 그린 작품들이 있다. 이 작품들 역시 저마다 자유와 행복을 노래하고 있었다. 문득 주변에서 지나치고 있는 많은 독일인들에게 무너진 베를린 장벽은 과연 당신들에게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 줬냐고 묻고 싶어졌다.

  다음으로는 동독 사람들의 생활상을 전시해놓은 ‘DDR박물관’으로 향했다. 과거 동독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체험했다. 동독 사람들이 사용했던 오래된 생활용품과 자동차를 직접 만져보고 동독 군인 옷을 입어보기도 했다. 서독에 비해 매우 허름하고 낡았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기억에 남는 것은 이 동독의 물품들이었다.

  이어 우리는 훔볼트 대학과 유대인 학살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훔볼트 대학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쇼펜하우어, 엥겔스 등 2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훔볼트대학은 캠퍼스가 따로 없다. 캠퍼스 대신 근처 광장이나 공원에서 휴식을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것 봐라!” 기행단장인 장경남 학생처장은 훔볼트 대학의 신문을 기자에게 건네 보였다. 훔볼트 대학 신문도 본지처럼 8면으
로 구성돼 있었다. 낯설기만 했던 독일이 처음으로 친근감 있게 다가왔다. 여기서는 무슨 내용을 기사로 담아내는지 궁금했지만 안타깝게도 알아볼 수 있는 단어는 하나도 없었다.

  유대인 학살 추모공원은 독일 국회의사당에서 내려다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잘못된 역사를 항상 직시하고 잊지 말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현지 가이드는 “독일은 전쟁세대들의 죄의식을 전후세대가 속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전후 독일 정부가 유대인 학살에 대해 공식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표현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 당시 식민지로 삼았던 여러
나라에 대해서는 이처럼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독일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짧은 묵념으로 추모한 후 베를린 전승기념탑을 돌아 독일의 상징 중 하나인 브란덴브루크 문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아홉 명이 탈 수 있는 자전거에 탑승해 광장을 한 바퀴 돌거나 야외 카페에 앉아 휴식을 즐기며 추억을 쌓았다.

  이후 이동한 드레스덴은 젬 퍼 오페라와 브뢸백작의 테라스, 츠빙거 궁전 등 볼거리로 가득한 도시였다. 광장 쪽으로 나오니 간편한 복장의 여자와 남자가 ̒Time to say good bye̓, ̒You raise me up̓을 부르며 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평화와 위용은 오랜 시간이 걸려 복원해낸 결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의 맹렬한 폭격으로 츠빙거 궁전 등의 옛 건물들이 무수히 파괴됐기 때문이다.

  체코 프라하 체스키크롬로프

  프라하는 문화유산들을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보존하고있었다. 거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돼 있을 정도였다. 정각이 가까워지자 프라하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천문시계 앞은 기대에 찬 얼굴을 한 사람들로 가득해졌다. 천문시계에 있는 인형들이 정각마다 눈을 뗄 수 없는 공연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형들은 1분 정도 춤을 추며 유한한 삶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욕망하는 인간들을 비웃었다. 이를 관람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유로울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후 방문한 체스키크롬로프는 빨간 지붕의 집들이 가득한 동화 같은 마을이었다. 이곳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모든 동화가 그렇듯이, 이 동화 속 마을에도 비극이 하나 숨겨져 있다. 이 빨간 지붕을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피하기 위해 민가의 지붕은 빨간색으로 칠하도록 한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됐다. 이날 점심을 예약한 식당에 문제가 생겨 학생들은 흩어져 직접 먹고 싶은 음식을 사 먹었다. 노천카페에서 이국적인 음식을 먹으며 즉흥연주도 들었는데, 몇몇 학생들은 악사에게 팁을 주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에벤제 잘츠부르크 잘츠캄머굿 비엔나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간 곳은 독일이 마지막으로 유대인들을 강제로 수용했던 에벤제 수용소였다. 당시 패전 소식을 들은 나치 친위대가 3만 명의 유대인들을 터널에 넣고 폭살하려고 했던 곳이기도 하다. 수용소는 어두운 토굴이었으며 한여름인데도 몹시 추웠다. 내부에는 학살된 유대인을 추모하고 과거를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담은 설치미술 작품들도 있었다.

  이후 모차르트의 고향이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기도 한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를 돌아봤다. 간판 하나하나가 예술작품 같은 게트라이데 거리와 구시가지를 지나 저녁을 먹으러 도보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이를 피해 근처 터널로 뛰어들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눈앞에 커다란 파라솔이 불쑥 나타났다. 단장님이 어디선가 파라솔을 빌려온 것이었다. 학생들은 옹기종기
열 명씩 파라솔을 쓴 채 차례로 이동했다. 이국에서의 색다른 경험에, 비록 빗속이었지만 학생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비엔나였다. 개교한지 600년이 넘은 빈 대학교 거리는 방학 중이라 한산했다. 그러나 도서관에는 많은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빈 대학교는 5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들 모두 재학시절에는 이 학생들처럼 도서관에 앉아 자신들의 꿈을 키웠을 것이다.

  그리고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도 볼 수 있었다. 기행 중 많이 봐왔던 르네상스나 바로크 양식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건물. “나 혼자 꿈을 꾸면 그건 한낱 꿈일 뿐이지만 우리 모두 함께 꿈을 꾸면 그건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을 건축한 훈데르트바서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꿈에서나 볼 수 있는 건물 같았다. 주변의 건물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 했지만, 묘하게 어울렸다. 곡선의 선물 사이에 심겨진 나무들이 잘 어우러져 하우스는 마치 삭막한 도시 속의 정원 같아 보였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비엘리치카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정말 거대했다. 나치는 이렇게 큰 수용소를, 그리고 이 수용소의 수용자들을 대체 어떻게 관리할 수 있었을까, 싶었지만 그들은 가혹하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수용자들을 관리하고 살인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많은 독일인들도 옆에서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이곳을 보고 있었을까.

  이후 방문한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은 13세기에 개발이 시작돼 8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채굴이 이어지고 있다. 8세기에 걸쳐 개발된 소금광산의 갱도는 그 길이만 해도 300Km가 넘는다. 깊이도 상당해서 200개가 넘는 계단을 걸어내려 가고, 이도 부족해 또 그곳에서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했다. 광산 내부에는 예배당과 운동장 등이 많았고, 소금으로 만든 조각상도 보였다. 거의 예술작품에 가까운 것들도 많아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경이롭기까지 했다. 특히 가장 큰 규모의 킹가예배당에는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소금으로 조각해 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광부들이 광산에서 나가지 못하고 오랫동안 일하는 과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운동을 하고, 또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였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마냥 감탄만 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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