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김현승 문학상 수상작 발표

 

지난 2013년, 본교는 김현승 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교기념일에 개최했다. 행사에 참석한 시인의 유족들은 김현승 시인을 기리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매년 일정금액의 성금을 모아 학교에 전달하기로 했다. 사업을 주관한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학과는 문학적 자질이 뛰어난 본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사업의 범위를 넓혀 전국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시 창작을 격려하고 지원하기로 했다.
  김현승 문학상은 올해 처음으로 진행됐다. 본교는 지난달 11일(금)까지 전국 대학생들의 시를 공모했다. 이에 총 155명의 학생들이 응모했으며, 본심에 오른 15명 중 당선작 1명과 가작 2명이 뽑혔다. 당선작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재학 중인 정승아의 「이어짐」이 선정됐고, 가작은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소속 이창훈의 「오누이달」과 숭실대학교 예술창작학부 문예창작전공 소속의 김혜린의 「옆」이 각각 차지했다.
   본심 심사위원으로는 강형철 시인(숭의여자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과 이은봉 시인(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그리고 엄경희 평론가(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함께했다.

 

                        <당선작>

   이어짐
                                                정승아(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먼지 많고 햇빛 많은 곳
용접을 하는 아버지의 뒷목이 뜨겁다
붉게 튀어 오르는 불꽃들이
보호마스크 표면을 때리고
아버지가 손을 멈추고 한숨을 쉬자
마른 등이 크게 들썩거린다
마스크를 벗고 습한 눈을 비비니
이마에 맺힌 땀방울
눈썹을 타고 턱 선을 따라 미끄러진다
달구어진 목덜미가 반질거리고
등줄기를 따라 땀으로 푹 젖은 작업용 셔츠는
쭈그리고 앉은 다리 밑으로 삐져나와 있다
둥그렇게 구부리고 앉은 아버지 옆모습을 보니
동화책에서 본 작은 빗방울 이야기가 떠오른다
산을 타고 내려와 커다란 강물에서 바다가 되어가는
비 한 방울 이야기
하지만 인생은 동화가 아니기에
아버지 인생에 찾아온 땀 한 방울은
하염없이 큰 강물이 되어 범람한다
아버지는 이미 깊은 강물 건너편에 계신다
보이지 않는 강을 사이에 두고
다시 마스크를 쓰는 아버지를 바라본다
뜨거운 불꽃이 차갑고 단단한 금속들을 이어주지만
나는 한 치의 불꽃도 되지 못한 채
서로 녹아드는 금속들을 부러워하며
짭짜름한 바닷물 그리운 맛을 느끼며
두 손을 꼼지락댈 뿐이다

 

<수상소감>

너무 감사드리고 부족한 작품인데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이 시는 저희 아버지를 생각하고 쓴 시입니다. 제가 아버지를 굉장히 싫어했었는데, 아버지에 대해 시를 쓸 때는 항상 포장을 하면서 쓰더라고요. 그래서 작년에 “내가 정말 아버지를 포장하면서 쓰면 나의 진심을 담아낼 수 없겠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아버지에 대해 솔직한 감정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포장하지 않고 진심으로 쓴 시가 상을 받아서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더 노력해서 좋은 시 쓰도록 하겠습니다.

              

                    <가작>

김혜린(숭실대학교 문예창작전공)

 

나는 옆에서 태어난 사람
엄마의 옆구리나, 오른쪽 뺨에 잉태 된 옆의 감정
비스듬히 바라보는 시간
낡은 앨범의 사진들 위로 햇빛의 옆면이 쏟아진다
엄마는 누렇게 얼룩진 당신의 계절들을 넘긴다
햇빛이 젖가슴의 능선을 타고 흐른다
길게 늘어지는 손길이 풍경의 내부 어딘가로 흘러들어간다
표정이나 햇살 너머, 카메라의 시선이 닿지 못한 곳
당신이 흘린 옆의 감정들이 깃발처럼 나부낀다
수십 년 전의 사진들이 담아내지 못한 옆의 풍경을 매만진다
풍경 밖의 풍경을 아는 건 당신이라는 소녀 뿐
시선 밖으로 흩날린 풍경들이 당신의 손길을 따라 그려진다
반쪽짜리 나무의 옆모습과 의자의 옆모습, 어느 별의 옆모습이 생겨나고
약간씩 휘어진 계절들이 생겨난다
나는 당신이라는 소녀의 콧날을 덧그린다
옆의 시각에서는 나무들도, 이정표들도 모두 비스듬히 서있었다
건물들도, 당신도, 당신의 계절들도
모두 내가 없는 곳에서 선명해진다
당신의 손가락의 풍경을 짚으며 내가 없던 당신의 시간들을 찾는다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이 지평선 너머의 첫사랑에게로 닿아있다
그 시선 어디쯤 내가 있었을까
길게 늘어지는 시선과 사진 사이의 간극에서 계절들이 뒤바뀐다
허공에 멈춘 꽃잎과 가을 창 밖에 내리는 빗물 사이의 거리
그곳에 내가 있다
나는 오래 전 옆모습을 남기고 사라진 사진 속의 소녀들을 알고 있다
일찌감치 옆의 신비를 알았던 소녀들
정면에서는 찾을 수 없는 아득함과
콧대를 쓸어내리며 아스라이 사라지던 손길들
옆을 사랑한 사람들
나는 반대편으로 넘어간 당신의 계절들을 질투한다
먼 곳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결코 내가 담길 수 없다는 것
나는 당신의 옆만 본다는 것
그러나, 오프 더 레코드
사실 당신을 옆으로 만들어진 옆의 사람
당신의 반대편 또한 옆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수상소감>

큰 상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원래 시에 저의 이야기를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시는 제가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저의 어머니에 대해쓴 시입니다. 어머니에 대해 쓴 시는 이 시뿐인데, 수상을 하게 돼 너무 기쁩니다. 앞으로도 저의 이야기를 시에 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작>

오누이달

이창훈(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날아가고 싶던 어느 유년,
어머니는 우리 오누이를 연(鳶)에 매달아 띄웠다
뒤꿈치에 묻은 골목길과
가느다란 휘파람소리로 이어지는 실타래
멀리 날아라, 부디 멀리 날아가라
밤늦게까지 떠올라 하늘을 기웃거리던 우리는
실을 타고 달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우리 울음을 기다랗게 뽑아
바늘에 끼우고는 세월을 뜨개질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나뭇가지에 목매달고
기어이 버려진, 유산된 연
젖은 어깨의 서낭당들이 머리를 숙였고
띄우지 못한 누이의 사춘기를 곱게 땋았다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겠냐
찬 새벽을 한 그릇 떠놓곤
정화수 속에 우리 오누이를 다시 낳던 어머니
어머니는 구겨진 종이처럼 기침을 내뱉고
길 위에 내려앉은 실타래를 쓸어 모았다
천천히 공기가 빠져나가는 풍선처럼
아득하게 흩뿌려지던 우리 오누이 웃음
우리는 모음(母音)을 여읜 자음(子音)이 되기 싫어서
자꾸만 어머니가 잡은 얼레를 내려다보곤 했다
달은 골목의 침묵으로 희미해져갔고 하늘은 놓쳐버린
연처럼 멀어졌다
바람도 흔들지 못하던 만월(滿月)의 요람 속으로,
낡은 사랑을 안고 우리는 떠나가고 있었다.

 

<수상소감>

먼저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더 노력하고 더 좋은 시를 쓰라는 것으로 알고 앞으로도 더 좋은 시 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 부문 심사평>

   가을과 고독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다형(茶兄) 김현승 시인은 정신의 고결함을 바탕으로 종교와 사회에 대한 명시들을 남겨 한국현대문학사에서 ‘형이상학적인 서정성’을확보한 독창적인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정신의 빈곤과 감성의 메마름으로 인해 도덕과 윤리가 실종되면서 삶의 지경이 황무지처럼 쓸쓸해졌다. 이러한 황폐함이 지성의 전당인 대학은 물론 한 시대의 정신적 좌표를 제시해야 할 문학인들사이에서도 종종 목도되곤 한다. ‘김현승 시문학상’은 다형 김현승 시인이 보여주었던 양심과 자유와 고독의 순결한 정신을 받들어 우리의 시대와 문학을 조금이라도 더 고결하게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시인의 유족과 숭실대학교 관계자들이 모여 제정한 뜻 깊은 문학상이라 할 수 있다. 공모전 대상을 대학생으로 정한 이유는 한국문학의 미래를 이끌어갈 시인을 발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따라서 한 알의 씨앗이 거목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 ‘김현승 시문학상’ 심사의 주요 기준임을밝힌다.
    제1회 ‘김현승 문학상’에 응모하여 예심을 통과한 작품을 놓고 본심위원들이 숙고하여 최종에 올린 작품은 김혜린의 「옆」, 이창훈의 「오누이달」, 정승아의 「이어짐」이다. 앞서 밝힌 것처럼 ‘가능성의 씨앗’을 심사의 우선 기준으로 한 바, 그 기준의 구체적인 적용은 세계(현실)를 마주하는 태도의 진정성과 자신의 생각을 시로 형상화해내는 유기적 구상 능력에 두었다. ‘나는 옆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인상적인 표현으로 첫 행의 문을 연 김혜린의 「옆」은 사물과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지만 세계의 안을 파고드는 의식의 치열함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라할 수 있다. 이창훈의 「오누이달」은 어머니와오누이의 관계를 ‘연’과 ‘연줄’의 관계로 비유하면서 “우리는 모음(母音)을 여읜 자음(子音)이 되기 싫어서”라는 절박함의 심정으로어머니와 자식 간의 끊을 수 없는 연대감의긴장을 잘 형상화했으나 몇몇 표현의 상투성들이 그 긴장성을 풀어지게 해 아쉬움을 남겼다. 정승아의 「이어짐」은 용접공인 아버지가 작업을 하는 모습을 서두르지 않고 조밀하게 묘사해가면서 “이미 깊은 강물 건너편에 계신” 아버지와 그 강을 사이에 두고 “한치의 불꽃도 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담담하면서도 밀도 있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읽힌다. 감정의 절제가 자칫하면 감동의 여운을 죽이는 경우가 많은데 정승아의 시는 그 지점을 잘 돌파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 점을 높이 평가해 정승아의 「이어짐」을 당선작으로,김혜린의 「옆」과 이창훈의 「오누이달」을 가작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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