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장을 다녀오면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이 김치찌개이다. 김치찌개를 먹을때 마음과 몸에 느껴지는 시원함과 따뜻함, 시큼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행복하게 만든다. 이런 느낌을 유럽 사람은 도저히 알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은 한국에서 태어나서 김치찌개를 먹고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남북한 사람들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본성과 같은 것이 형성되어 있다. 남북한 사람들도 70년 동안 분단의 땅에서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교육을 받고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고 다른 사상을 주입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감정체제, 가치관, 세 계관, 외형인식, 행동양식, 심층적 언어의 의미들은 서로 매우 다르게 작동된다. 어떤 면에서는 북한 사람들과 남한 사람들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려울 수 있다. 긴 세월 동안 민족 정체성 (ethnic identity)이 다르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통독 25주년이 되는 지금도 독일이 서독인과 동독인들의 사회 갈등을 해결하기 어려워하는 이유도 이해가 된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독일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통일을 경험하고 통일 이후 독일에서 살다가 서울대학교 교수로 오신 박성조 교수가 10년 전에 ‘남과 북 뭉치면 죽는다’란 책을 출간했다. 서독사람과 동독사람은 통일 전에 교류가 남북한 보다 비교적 활발했지만 독일이 통일을하고 보니 서로를 너무 몰랐기에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서로 인성과 문화를 알고 준비하고 통일을 맞이하지 못했다. 그런데 남북한 사람들은 독일보다 분단 기간도 길다. 독일의 분단은 45년이었지만 남북한의 분단은 이미 70년을 지나가고 있다. 독일은 민족 상잔의 전쟁이 없었지만 남북한 사람들은 6.25 사변을 경험했다. 우리는 독일보다 더 서로를 알고 준비해서 통일을 맞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반도의 정치와 땅의 통일(unification)은 순간이지만 그 통일 후에 남북한 사람들의 통합(integration)은 긴 과정이다. 기능주의의 통일도 준비하고 진행되어야 하며 동시에 더 깊이 남북한 사람들의 통합을 준비하고 진행해야 한다. 땅의 3.8선 보다도 마음의 3.8선이 더 깊고 더 길기 때문에 해결해야 할 큰 과제이며 풀어 나갈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물과 기름을 섞는 방법은 계란 노른자이다”라고 말한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 ‘계란 노른자’는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 정신’이아닐까? 예수는 마태복음 9장 13절에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선포하셨다. 의인이신 예수가 의인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선언하고 의인과 죄인이 식탁공동체를 이룬 것이다. 인류를 지배해 온 ‘닮음의 원리’ (likeness principle)를 산산이 깨버린 새로운 정신을 창출한 것이다. 이것을 독일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은 타자를 받아들이는 공동체(unity by diversity)를 가능하게 한 예수님의 정신으로 이해했다. 혈육으로 한 동포임에도 불구하고 70년 동안 서로 민족 정체성이 극도로 이질화 된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 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바탕이 ‘예수 정신’일 수 있음을 나타낸다. 서로를 이해하고 다름을 존중하며 서로의 모습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창조하는 것이 통일 준비일 것이다.

 남한에 보내준 북한이탈주민들은 남북한 통합국가가 과연 성공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고 평등한 마음으로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통일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자살자가 나오고 “탈북을 용서받고 먹을 것 걱정이 없다면 다시 북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들 앞에 죄스럽고 통일의 미래 앞에 검은 구름을 본다. 그들은 평등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야 하고 소수자인 그들을 우린 우리와 다른 점을 이해하고 친구로 존중하며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가야 통일을 맞이할 희망이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분단의 시대 끝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들은 숭실대 학교 교정에서, 남한 사회의 곳곳에서 북한이탈주민들과 친구가 되므로 한발짝 더 가까이 통일로 갈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옆에 있는 어느 누구라도 그의 다름을 이해하고 그 다름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 마음이야 말로 통일로 다가가는 발걸음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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