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 말아요. 누구라도, 누구라도 배고프면 화냥년도 되고, 양공주도 되 는 거여요.” 검둥이 갓난아이를 감싸 안고 외치던 몽실은 겨우 10살 남짓 되 었을까. 

  몽실의 말에 한참을 생각했다. 스스 로 올곧다 생각하며 나만의 도덕적 잣 대를 가지고 타인을 판단했던 오만한 지난날들과 다른 사람의 입장을. 그들 나름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 면서도, 여전히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오늘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제멋에 어 리광 부리고 한참 예쁨 받을 나이에 몽 실은 벌써 다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 며 품고 자신에겐 체념에 가까운 위로 를 건넨다. 어떻게 보면 몽실에게는 자 신의 삶이 없다. 하지만 또 다르게 보 면 남을 위하고 품어주며 사는 것 자체 가 그녀의 삶일지도 모른다. 힘든 시대 에 큰 그릇을 가지게 된 운명인걸까? 나는 생각했다. 무엇이 저 사람들로 하 여금 저 핏덩이에게 발길질을 하게 만 들었을까? 몽실의 삶은 참 고단하다. 10살이 되기도 전에 ‘먹을 것이 없어’ 아버지를 떠나는 어머니를 보았고, 눈 칫밥을 얻어먹다 다리도 평생 절게 된 다.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신세지는 것 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거리를 헤매던 몽실의 삶은 비단 그녀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배부른 돼지 보다 배고픈 소 크라테스가 낫다.’라는 말 보다 ‘배고 픈데 장사 없다.’라는 말이 더 어울리 던 그 때. 왜 사는지, 왜 이렇게 되었는 지 고민 해보는 것조차 사치요, 당장 1 분 1초 숨 쉬는 것이 우선인 사람들. 검 둥이 갓난아이에게 하던 발길질은 어 쩌면 쏟아낼 대상을 몰라 감춰왔던 분 노일지도 모른다. 검둥이 갓난아이에 게 발길질을 한 그 사람들도 집에 가면 배를 붙잡고 있을 식솔들, 바로 옆집의 배를 곯는 이웃들에게는 그리 모진 사 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단지 몽실의 그 릇이 아주 조금 더 넓었기에 그 험난한 환경 속에서 타인을 좀 더 품을 수 있 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날, 이런저런 정신적인 전쟁통 속에 살고 있는 나도 몽실의 그릇을 닮 은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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