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응모기간이었지만 시험이 겹친 데다, 홍보마저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제3회 숭대시보 편지공모전’에 많은 작품들이 응모됐다. 세 부문에 고루 나뉘어지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스승님께 드리는 편지’ 부문에만 장려상을 정하지 못한 채 수상작이 선정됐다.
편지란 너무도 사적인 글이라 감히 가타부타 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응모작들 글 하나하나에, 진심을 나누고 어루만지려는 노력이 배어있었다는 점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공모전을 계기로라도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게 됐으니 성공적이지 않은가. 응모작 모두를 수상작으로 선정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면관계상 최우수상으로 뽑힌 편지만 공개한다. 가슴 따뜻해지는 글, 마음이 환하게 물드는 글들을 음미해보길 바란다.

편집자주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

부모님께

박현빈(정통전·4)

정지현(생명정보·3)

심상호(사학·3)

스승님께

김진경(일어일본·1)

김연지(법학·2)

없음

친구에게

한설비(물리·1)

표선욱(컴퓨터·4)

박혜정(경영·2)

 

 



어머니 전상서



군대에서 유격훈련을 받는 마지막 날, 연병장에 누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외치라고 했을 때, 눈물이 앞을 가리고 목 놓아 불렀던 그 이름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 저 현빈입니다. 언제나 말만 앞세워 호강 시켜드리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는 막내 아들입니다. 오늘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져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왜 저는 이제서야 당신의 양쪽 어깨에 근육이 그토록 뭉쳐있는지 알았을까요. 그리고 왜 저는 군대를 전역하면서 당신의 발을 씻겨 드리겠다고 한 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까요. 그런데도 언제나 변함없는 당신의 사랑은 왜 이리도 푸근한 걸까요. 사랑을 받는데는 일등이면서 사랑을 드리는데는 꼴찌인 제 자신이 너무나도 창피합니다.

어머니, 비정규직인 외국인 보호소의 경비를 맡으시며 일 하신지 벌써 3년이 넘었네요. 연세가 쉰이 넘으셔서 처음으로 시작한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됐습니다. 그러다 당신이 그런 일을 하는 이유가 제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때 저는 담배를 끊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으니까요.

군대에서 유격훈련을 받는 마지막 날, 연병장에 누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외치라고 했을 때, 눈물이 앞을 가리고 목 놓아 불렀던 그 이름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 저 현빈입니다. 언제나 말만 앞세워 호강 시켜드리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는 막내 아들입니다. 오늘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져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왜 저는 이제서야 당신의 양쪽 어깨에 근육이 그토록 뭉쳐있는지 알았을까요. 그리고 왜 저는 군대를 전역하면서 당신의 발을 씻겨 드리겠다고 한 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까요. 그런데도 언제나 변함없는 당신의 사랑은 왜 이리도 푸근한 걸까요. 사랑을 받는데는 일등이면서 사랑을 드리는데는 꼴찌인 제 자신이 너무나도 창피합니다. 어머니, 비정규직인 외국인 보호소의 경비를 맡으시며 일 하신지 벌써 3년이 넘었네요. 연세가 쉰이 넘으셔서 처음으로 시작한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됐습니다. 그러다 당신이 그런 일을 하는 이유가 제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때 저는 담배를 끊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으니까요.


무엇으로 보답할까요. 이런 무거운 사랑을 가볍게 받는 어린 제 자신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지금은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어머니가 주신 사랑의 절반은 갚겠다고. 그러니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합니다. 제가 앞으로 당신께 드려야할 사랑을 다 받으시려면 정말로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합니다.

어머니,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언제나 내 옆에 있어준 나의 수호천사. 그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포경수술로 마취가 풀려 잠도 못자고 괴로워하고 있을 때 슬며시 옆으로 다가와 다독여주시던 그 모습. 수능이 끝나고 예상보다 낮은 점수에 절망하며 흐느낄 때 제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씀해 주신 그 모습. 대학 동아리에서 처음으로 공연하던 날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봐 주시고 대견한 아들을 두어 자랑스럽다고 말씀해주셨던 그 모습. 군대에 입대하던 날 끝까지 미소로 지켜봐 주시던 그 모습.


그토록 사랑해 주셔서 이렇게 건강하고 풍성한 웃음을 가진 제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의 아들이어서 너무나 자랑스럽고 행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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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최우수상 박현빈(정통전·4)







나의 분무기, 정민에게


봄, 해, 달, 별, 물, 풀, 흙, 너.


정민아, 안녕. 너의 청량함을 닮은 봄이 왔구나. 겨울에게 전화를 걸어 냉큼 봄이를 데려오라고 하고싶다던 우리의 바람대로, 겨울은 겨울의 농도만큼 춥고 쓸쓸했다가 이제는 봄의 기운이 새싹 위에, 사람들의 어깨 위에 봉긋봉긋 물들고 있어.


작년 봄, 니가 우리 엄마에게 건 한 통의 전화가 기억이 나서 입가에 살포시 웃음이 번진다.


‘띠리리링..’
‘여보세요?’
‘아..안녕하세요. 설비 어머님 맞으시죠?’
‘네. 맞는데요. 무슨 일이시죠?’
‘아..예.. 안녕하세요. 저는 설비 친구 임정민이라고 합니다. 저, 다름이 아니라... 제가 용하다는 성형외과를 알게되었는데 이 전화번호가 설비한테 꼭 필요할 것 같아서요..’


너의 엉뚱하고 재치 가득한 전화에 우리 엄마도 한참 웃으셨지. 이렇게 항상 너는 나에게 꾹꾹 정을 눌러담아주는 친구였어.


중학생 때, 서울시 주최 미술대회에서 처음 만났던 순간이 모락모락 떠오른다. 우연히 같은 풍경을 화폭에 담게 되어서 서로 입상하려고 경계심 가득한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던 철없는 중학생들이었잖아. 하지만 대화도 나누고 도시락도 함께 먹으면서 경쟁자가 아니라 마음이 잘 통하는 또래라는 것을 알게되었지. 옛 말에 ‘가치있는 적이 될 자와 화해하면 더 가치있는 친구가 될 것이다.’ 라고 했는데 바로 우리의 만남을 두고 한 말 같아.


얼마 전 너와의 전화통화에서 니가 ‘나 많이 보고싶어?’라고 물었을 때 ‘하나도 안 보고싶어’라는 짖궂은 대답에 내심 서운했을거야. 그치만 너는 나를 알잖아. 내가 어딘가 좀 부족하고 시원찮은 사람이란 걸. 단 것을 싫어하면서도 찰리와 초콜릿 공장 영화를 보고나서는 마트로 달려가 초콜릿을 한 주먹 사왔던 것처럼, 전화를 끊고 돌아서면 또 보고싶어하는 나라는 걸.


정민아, 나는 요즘 무럭무럭 자라나고있어. 늘 그러했듯이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 않고 생글생글 잘 웃고 여전히 단무지를 싫어하고 또 노래를 부를 때 여전히 고음처리가 안 되는 생활을 살고있단다. 대학생이 되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지키는 법도 조금씩 배워가고 있어. 인생은 나이로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의 결핍으로 늙고, 피부의 주름보다는 영혼의 주름을 두려워하자던 너와의 약속은 해가 거듭할수록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낯선 파리의 공기를 호흡하며 미술공부에 열정을 쏟아 붓고 있을 정민아, 청포도 알 같은 5월의 봄이 왔어. 정민아, 니가 그립고 그리우며 그립다. 하지만 우리는 20대잖아. 이제는 서로의 시간을 존중해줄 줄 아는 나이니까 그리워도 참아야겠지. 니가 파리로 유학가기 전날, 우리가 함께 한 다짐 기억하지? 20대를 어떻게 보냈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좌우하고, 지금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우리의 20대를 좌우할 거라는 것. 꿈을 향해 달리고있는 우리의 모습이 참 아름답고 꿈꾸는 너를 친구로 둔 나란 사람의 꿈이 또 한없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봄날이구나.


21세기의 21살로 매일을 사는 것은 서울이건 파리건 홀로 서기 위한 도전의 연속이지만, 삶의 열정이 지글지글 튀김질하는 현재를 살자. 그렇게 20대라는 산을 지나고 또 30, 40대라는 바다를 건널 때에 서로의 분무기가 되어주자. 지치고 힘겨운 순간이 찾아올때도 있겠지만 늘 싱싱한 심장을 품을 수 있도록 서로에게 물 주는 것을 잊지말자. 꽃은 피었다 지고 잎은 바짝 말라서 떨구더라도 서로의 뿌리에 촉촉한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 분무기가 되자. 그리고 지금처럼 서로의 곁에서 주렁주렁 꿈꾸자.


나는 요즘 파리의 기상예보를 꼼꼼히 체크하고 파리에 관한 신문기사나 뉴스가 있으면 유심히 읽어보는 습관이 생겼단다.


싱그러운 이 봄, 파리의 작고 좁은 골목길과 낮은 신호등, 수 십 개의 이름 모를 다리들, 낯선 이들의 긴 그림자들 속에 머물러있을 너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눈은 작지만 크게 생각하고 키는 크지만 시선은 항상 낮은 곳을 살피는 친구니까 손톱만큼도 걱정이 없단다.


나의 분무기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유명한 예술가나 재능 있는 화가들도 낙담한 적은 많았지만, 예술의 자취는 한 번도 정숙한 적이 없었고 나태한 적이 없었으니 너도 잘 해낼거다.


나는 너를 위해 기도하고있고 너도 나를 위해 기도함을 알고 있으니까 우리는 깊-이 행복할거야. 또 편지 할 때까지 건강하렴. 몸도, 마음도, 정신도, 영혼도.


5월에.
너의 友, 설비 씀.
친구에게 주는 편지 최우수상 한설비(물리·1)






황정일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 건강하시죠? 졸업하고 벌써 3달이란 시간이 흘렀어요. 고3이란 힘겨운 시간동안, 선생님과 함께 하면서 공부만이 아닌 많은 걸 배웠었는데 대학에 들어와 보니 이젠 아무도 그런 걸 가르쳐주지 않네요. 고3을 돌이켜봤을 때 제일 행운이었던 걸 꼽으라면 전 주저 없이 선생님께서 제 담임선생님이셨던 거라고 할 거예요.


선생님께선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않으셨어요. 그렇다고 아이들이 대들지도 않았죠. 그건 정말 마법 같은 일이었어요. 선생님을 미워하는 학생이 단 한명도 없다는 건 마법으로도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니까요. 선생님의 따뜻한 미소와 인자함이 이루어 낸 결과죠.

선생님은 조용하시고, 엄숙하셔서 다들 선비라고 했지만 사실은 정말 특이한 분이셨어요. 수업시간에 칠판에 필기를 하실 때 자주 틀린 철자를 쓰기도 하시고, 컴퓨터를 연결하는 선에 자주 걸려 넘어질 뻔도 하셨어요.


선생님께서 ‘피라미드’를 ‘피라믿으’ 라고 쓰셨을 때 반 아이들 모두 웃겨서 큭큭 거렸던 일 선생님은 모르시죠? 그러면서도 선생님께서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함박웃음을 1년 동안 두 번 정도 밖에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선생님의 학생들에게 많이 웃어주세요. 저희들은 선생님의 웃음을 정말 보고 싶어 했답니다.

고3은 정말 힘든 시기였어요. 공부는 제일 안하는데 몸과 마음은 왠지 점점 지쳐갔어요. 제가 수능보다 내신이 좋아서 수시를 쓰게 됐을 때 선생님께 많이 의지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 선생님께선 제게 계속해서 희망적인 말을 해주셨어요.


약간은 제가 자만해 질 정도로 희망을 주셨죠. 하지만 10군데나 원서를 쓰고 적어도 3개는 붙을 거라던 선생님의 말씀과는 달리 하나, 둘, 셋.. 불합격 통보가 오면서 많이 울고 선생님을 조금 원망도 했는데, 그 때 선생님께서 그러셨어요.


‘별은 어두워져야 더 잘 보인단다.’ 제 눈앞은 계속계속 어두워졌지만 별은 보이지 않았어요. 이 때 선생님께서 계속 격려해 주셨기에 제가 수능을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 할 수 있었죠.

수능이 끝나고 전 수능 최저등급제가 있는 수시발표를 2개 남겨뒀지만 지쳐버린 제게 수시는 이미 포기상태의 일이었어요. 수능으로는 내신보다 훨씬 낮은 학교를 지망해야했기 때문에 우울해져 있었죠. 그런데 12월 15일. 포기하는 심정으로 숭실대학교 수시 합격확인을 하는데 ‘합격’ 이란 글자가 제 눈에 들어왔어요.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울며불며 선생님께 문자를 했었죠.


선생님께서는 바로 전화하셔서 울고 있는 제게 말씀하셨어요. ‘수고했다. 숭실대학교만 인재를 알아보는구나.’ 힘들었던 날들이 머릿속으로 마구 지나가는데 선생님의 말씀에 전 더 벅차올랐어요.

9개의 ‘불합격’과 마지막 1개의 ‘합격’. 전 지금 숭실대학교에서 너무나 행복해요. 제가 하고 싶은 걸 배우고 있으니까요. 마지막까지 무조건 일어학과를 쓰겠다는 제 고집을 꺾지 않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제 행복은 선생님께서 안겨주신 거예요. 입학식인 3월 2일, 선생님 생신이었는데 선생님께서 청주에 있는 학교로 발령 나시는 바람에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몇 일전에 건강하시냐고 문자드렸을 때 길게 음성 메세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역시 항상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 주시네요. 5월 안에 날 잡아서 반 친구들과 꼭 찾아뵐게요.

마지막으로 저의 히어로 황정일 선생님. 마음으로부터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스승님께 드리는 편지 최우수상 김진경(일어일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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