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한반도 정세를 보면 남북한이 추구하는 정책의 명분과 정당성의 기반은 판이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대치의 양상은 ‘치킨게임’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치킨게임’은 행위자들이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면서 승자가 패자에게 ‘치킨(비겁자, 애송이)’이라는 불명예를 안기는 싸움을 일컫는다. 담력과 배짱을 겨루기 위해 기차가 달려오는 철로 위에 누워서 누가 오래 버티는지 혹은 직선주로에서 마주보고 자동차를 몰아 누가 피하지 않는지를 결정하는 대결 등이 그 예다. 자존심을 걸고 극단으로 향하는 이러한 게임은 자칫 공멸을 초래할 위험성이 높다. 

  금년 초부터 북한이 전개하는 일련의 도발행위에는 강대국들과의 ‘치킨게임’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함으로써 북한 내에서 보스로서의 위상을 확고히하려는 김정은의 의도가 개재되어 있다.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의 정책주도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그의 인성이 대내외 정책에 어떻게 파급되고 있는지도 살펴볼 만하다.

  절대 권력자의 인성에 대한 비유로는 플라톤의 『국가론』 2권에 인용된 ‘기게스의 반지’를 들 수 있다. 목동(착한 이미지) ‘기게스’가 자신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반지를 얻게 되자 궁궐로 들어가 왕비와 간통한 데 이어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된다는 우화이다. 여기에서 ‘기게스의 반지’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Exousia)’를 의미하며, 인간이 이를 갖게 되면 착한 품성의 사람도 결국 나쁜 쪽으로 흘러간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자에게 철저한 덕성교육을 시켜 좋은 인격이 체질화되도록 노력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의 수령론에 의하면 수령은 ‘인민대중의 최고뇌수’ , ‘통일단결의 중심’으로서 ‘절대적 지위’를 갖고 ‘결정적 역할’을 한다. 수령이 갖추어야 할 요건으로는 “탁월한 영도력과 선견지명·예지와 함께 품성 면에서도 고매한 덕성”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북한 수령인 김정은의 품성은 어떤지 그 성장배경과 통치행태를 통해 알아보기로 한다.

  김정은은 출생 사실조차 할아버지에게 숨겨야 할 만큼 독특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북한 내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기 어려웠던 김정은은 소년시절에 형·여동생과 함께 상당 기간 외국유학을 하였다. 지병치료를 주로 해외에서 받던 어머니가 왕래하면서 간헐적으로 들르기는 하였으나, 대개 이모와 이모부가 이들을 돌보았다. 하지만 이모의 입장에서는 ‘왕자’, ‘공주’로 불리면서 장차 절대 권력자로 부상할 아이들을 절제력 있는 인격자로 양육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더욱이 김정은은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강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이뤄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고 하니 더욱 간섭받기 싫어했을 것이다.

  통치행태의 측면에서는 아버지 김정일이 갑작스럽게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가 극적으로 회복되는 듯 하더니 돌연 사망하는 바람에 순차적인 권력승계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점도 고려해야 할 요인이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 자리를 동시에 꿰찬 그는 어린 나이와 통치경험 미숙에서 오는 콤플렉스를 충격요법과 과감한 돌파력으로 만회하고자 했다. 핵심 간부들을 잇따라 공개처형하는 등 사회전반에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활발한 현장 방문 및 모험을 감수하는 행보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였다. 김정은은 우리 GP로부터 350미터 거리인 최전방의 오성산 까칠봉과 판문점 방문, 탱크 운전, 잠수함 탑승, 27톤의 소형 목선을 타고 섬 방문, 실탄과 포성이 난무하는 군인들의 사격훈련장 직접 참관 등 무모할 정도의 과감한 행보를 서슴지 않고 있다.

  반면에 김정은은 공로가 있는 자들에 대한 시혜와 일반 대중들과의 스킨십도 활발히 하고 있다. 대규모 행사 때에는 수천 명의 군인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노동자들의 소규모 공연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특별한 공로가 있는 어부·핵 기술자·우주 과학자들을 상대로는 수백 명에게 자신이 직접 표창장을 수여하고 일일이 악수를 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또한 ‘모든 것을 인민을 위해, 모든 것을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 ‘인민들에게 최고의 사회주의 문명을 최상의 수준에서 누리게 하자!’ 는 등의 구호를 주창하면서 스스로 “인민을 위해 멸사복무하는 길에서 하나의 모래알이 되어도 좋다”고 공언하기도 한다.

  외견상 김정은의 인성에는 “통제받지 않은 힘은 나쁜 쪽으로 흐른다”는 플라톤의 경고와 “도덕적인 행위를 반복하면 도덕적인 사람이 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관이 혼재된 것처럼 보인다. 북한을 상대로 한 정책추진이나 입장 표명 시 김정은의 인성도 중요한 고려사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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