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동쪽에 핀란드를 향하고 있는 스톡홀름이 있다면 서쪽에는 덴마크를 바라보는 예테보리(Göteborg)가있다. 스웨덴어의 발음법을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왜 ‘Göteborg’가 ‘예테보리’로 읽히는지의아해 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직항이 없어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바우처를 이용하여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제일 빠른 비행기 편으로 예테보리 랜드베터(Landvetter)공항에 도착했다. 무색무취의 공기가 이토록 맛있게 느껴지다니 역시 이 곳은 청정한 북구(北歐)다. 말로만 듣던 빨간 머리 미인들이 주변을 지나가고 저 빨간머리 한 가닥을 얻고 싶은 이상야릇한 감정이 솟구친다.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TV드라마 ‘말괄량이 삐삐’의 주인공 잉거 닐슨(Inger Nilsson)처럼 생긴 소녀들도 눈에 띈다. 스웨덴은 ‘아바(ABBA)’라는 팝 역사상 굵직한 히트곡을 제조해냈던 그룹사운드도 있지만 이렇게 창의적인 가족 드라마도 있다. 아바가 뇌쇄적인 성인용이라면 말괄량이 삐삐는 순진무구한 어린이용이다.

    예테보리는 ‘용감한 주민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도시 이름의 뜻을 알고 나면 도시의 색깔이 더 명확해진다. 팔뚝에는 문신을 하고 얼굴에는 온갖 피어싱을 한 채 거리를 활보하는 청소년들은 용맹한 고트족의 후예처럼 보인다. 한국 같으면 문신과 피어싱을 한 것만으로도 불량청소년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거 같은데 이도시에서는 그냥 각각의 개성으로 인식되는 듯하다. 영화감독 팀 버튼(TimBurton)이 이들을 본다면 당장 길거리 캐스팅을 하여 자신의 영화에 출연시킬 것 같다. 이 도시에서는 나쁜 것도 이상한 것도 없다. 전부 다르게 존재하는 자신을 당당히 드러낼 뿐이다. 조각가 카를 밀레스(Carl Milles)의 포세이돈 분수를 보고 싶어 호텔 로비에서 지도를 얻어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스웨덴어 철자법은 생소하기만 하다. 이 분수는 미술관, 도서관, 극장, 콘서트홀이 몰려 있어 예테보리의 문화센터라 불리는 예타 광장 (Götaplatsen)에 있는데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길에서 지도를 들여다보는 사람에게는 어김없이 ‘구세주’가 나타나는 곳이 북유럽이다. “도와줄까요.” 열댓살 정도의 앳된 얼굴을 한 소녀가 나에게 묻는다. 행선지를 이야기하자 가는 방향과 이정표를 상세하게 알려주는 예테보리 파란 눈 소녀. 고마움을 표시하고 떠나려는 나에게 소녀가 하는 말은 귀를 의심하게 만든다. “부모님 이 여기서 한 블록 아래에서 성인용품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따가 혹시라도 살 물건이 있으면 다른 가게로 가지말고 우리 가게로 오세요.” 이 무슨 어울리지 않는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어리둥절한 상태로 어색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는 나.


     하루 여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내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은 불법이 아닌 것이라면 모든 것을 허용하고 즐길 수 있게 만든 스웨덴 사람들의 합리성이었다. 감추어서 더 곪아터진 사회보다는 모든 것을 드러내고 떳떳하게 이야기하는 사회야말로 선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異常)한 사회적 고정관념 때문에 부모의 직업조차 창피해하는 한국 사회보다는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스웨덴 사회가 더 건강해 보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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