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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감독의 영화 <아비정전>은 개봉 당시 흥행에 참패한다. 80년대 말 90년대 초, 홍콩 영화라 하면 상당수의 지분이 느와르 물에 편향된 상태였다. 쿵푸영화 역시 인기 있었지만 장국영, 유덕화, 장만옥 등의 초호화 캐스팅이 주는 기대감이란, 의리를 진하게 녹여낸 느와르 물이 분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극장 안은 습하고 음울한, 모노톤과 블루톤의 영상으로 가득 했다. 흥행 참패와 환불 사태는 당시 배신감을 느낀 관객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아비정전>은 왕가위 감독의 회심의 역작으로 인정받게 된다. 전례 없는 형식미는 왕가위 감독을 영화 작가로서 인식시킨다. 그리고 영화는 발 없는 새, 아비(장국영)를 탄생시킨다. 영화 <아비정전(Days of Being Wild)>은 제목처럼 아비가 아무렇게나 살아 버린 삶 그 자체를 담는다. 전신 거울 앞에서 맘보춤을 추는 남자 아비는, 날 때부터 친어머니에게 버림받는다. 발 없는 새처럼, 그는 꿈도 미래도 없이 떠돌아 다니며 소모적인 관계만을 가진다. 만나지못한 친모에게만 집착할 뿐이다. 사랑받지 못했기에 그는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수리진(장만옥), 루루(유가령), 계모 등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들을 떠나기만 한다. 그러나 영화 속 모든 인물은 시간에 갇혀 산다. “너와 나는 1분을 같이 했어. 난 이 소중한 1분을 잊지 않을거야.” 수리진에게 건넨 아비의 한 마디는 그녀에게 영원이 된다. 그러나 아비에게는 순간일 뿐이다. 그녀와 이별하고 만난 루루 역시 아비의 헌신하기를 바란다. 그를 자신의 시간에 잡아두길 바란다. 상실한 사랑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상처는 아비 그 자신의 것이기도 하지만, 영화 속 그를 사랑하는 인물들은 그로 인해 아픔을 겪는다. 아비는 결국 수리진이자 루루이기도 하며 새엄마이기도 하다. 죽기 전에는 결코 땅으로 내려올 수 없는 새의 운명처럼, 스스로의 시간을 재단해 놓은 아비의 결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잊히지 않는 사람이 된다. 장국영이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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