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식(耳飾) -

 

현대인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귀고리를 한다. 간단한 링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귀부인의 상징처럼 치렁치렁 길고 여러 개가 연결된 귀고리를 달기도 한다. 황금 문화가 꽃을 피웠던 신라의 왕릉에서는 왕과 왕비의 무덤에서 예외 없이 화려한 귀고리가 출토된다. 무덤에서 출토된 귀고리의 위치를 통해 망자의 머리 부분이 어느 쪽인지를 확인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화려한 귀고리의 기원이 된 것은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조개를 이용한 귀고리 장식이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주로 한 개를 사용한 예가 많았다. 그렇다면 결합식으로 된 귀고리의 기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낙랑 고분에서는 색깔과 모양을 달리하는 여러 가지 옥을 연결하여 귀고리로 사용한 예가 다수 발견된다. 학계에서는 이를 화려한 결합식 귀고리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낙랑의 결합식 귀고리가 고구려를 경유하여 신라와 백제에 정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형태와 모양은 지금의 현대적 귀고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 시기까지는 왕과 왕비에 국한하여 귀고리를 하였다. 조선시대 이후에는 일반인들도 귀고리를 하였는데, 혼례 시 여인들에 국한하여 화려한 귀고리를 착용하였다.

   우리 박물관 낙랑 귀고리는 전체 길이가 5cm 내외이다. 작은 장고 모양의 흑색옥에 2개의 원형 구슬옥을 연결하고, 마지막으로 물방울 모양의 청색 옥을 연결하여 제작한 것이다. 각각의 옥은 실을 이용하여 연결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실은 부식되어 잔존하지 않는다. 옥의 종류로는 유리옥이 사용되었지만 후대에는 점차 금박유리옥이나 수정옥을 사용하는 예가 증가한다. 박물관 소장 이식은 지금 귀에 걸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그 색과 모양이 화려하다. 유물을 이용한 문화 상품을 개발한다면 가장 빛나는 상품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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