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기에 숭실대에는 고쳐야 할 폐단이 3가지 있다. 첫째는 일부 졸업생의 연고주의적 주인의식이다. 주인의식이란 자신을 사물의 소유자 곧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자의식으로서 집단의 구성원에게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바람직한 정서적 태도이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했다는 지극히 사적인 연고를 내세워 강박적으로 주인행세하는 것, 동료구성원 위에 군림하고 공적 의사결정시스템을 무력화하는 무도한 행태는 그저 모방갑질, 진상일 뿐이다. 직장이라는 공공성은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사적연고를 매개로 각종 이권과 권력의 향배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고주의적 주인의식은 오지랖을 넘어 위장된 사익추구이다.

  둘째는 기독교의 범람 혹은 무분별한 예수타령이다. 가끔 예수대학이니 하나님대학이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 하나님을 왜 그렇게 미소(微小)한 존재로 만드는 걸까,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세상 만물 가운데 하나님의 소유 아닌 것이 무엇인가. 크리스천들이 그토록 신봉하는 예수는 유감스럽게도 크리스천이 아니었다. 크리스천이라는 거, 그거 훈장 아니다. 삶의 과제로 짊어져야 하는 멍에, 십자가이다. 교수임용에 전근대적 교인증명이 왜 필요한가. (교인등록에 학위증명서 제출하라면 어떻겠는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인가. 내세울 거라곤 교회직분밖에 없는 이들이 으레 서푼어치도 안 되는 신앙심으로 모든 걸 재단하려든다. 신앙은 하나님과 나의 은밀한 실존적 교제이다. 소금, 그냥 물에 형체도 없이 용해되어 맛을 낸다. 신앙은 수단가치가 아니다. 무분별한 신앙타령은 입신양명이 원(願)이로되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 구사하는 양두구육식 자기과시이다. 출세주의자의 왜곡된 자기현시욕이 빚어낸 토사물이다.

  셋째는 숭실의 과잉이다. 숭실다움이니 평양숭실이니 숭실의 남발이 작금의 풍조이다. 그러나 정작 숭실이 고민해야 할 물음은 대학다움이다. 대학의 기능을 다하면 숭실은 절로 부상한다. 대학인 한 숭실은 대학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숭실 뒤로 숨는 것은 대학으로서 수준미달임을 자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분식(粉飾)한 자신감은 열등감의 다른 이름이다. 속이 꽉 차면 자신감은 절로 붙는다. 3가지 병폐 모두 지나침이 화근이다. 과유불급이라던가. 도를 넘으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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