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 명확한 규정·독립적인 감시기구의 필요성 주장

 

  헌법재판소에서 지난 7월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의 핵심 쟁점인 ‘언론인과 사립 교원을 법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것’에 대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김영란법은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포함한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과 상관없이 1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을 받는 법이다. △식사접대: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 △대외강연비: 100만 원 등 상한을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한 것을 골자로 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2012년부터 추진해 지난해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는 김영란법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부정청탁의 개념이 명확성의 원리에 위배돼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등의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결국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따라서 오는 9월 28일부로 법률이 실시된다. 법률이 실시될 경우 언론인, 사립대학의 교직원이 모두 적용대상에 포함된다. 논문심사 시 관행으로 지급하던 선물·금품 제공이 엄격히 제한되고, 대외 기관이나 언론인에 제공하던 명절 선물·접대비도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대학들에서는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환영의 목소리와 민간영역을 과도하게 규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또한 부정·비리 감시가 사회 또는 학내 구성원을 통제하는 도구로 활용되지는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교수사회의 청탁 관행 척결…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할 것

  김영란법 시행으로 인해 교수사회에서는 크고 작은 청탁 관행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대학원생이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논문 심사비 외에도 외부심사자의 교통비와 식사대접비, 숙박비 명목으로 최소 10~30만 원가량의 거마비를 관행으로 지급해왔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박순준 이사장은 “석‧박사 학위 심사과정에서 교수들이 금품이나 향응 등을 관행이라고 당연시하고 제대로 지도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많았다”며 “김영란법 제정을 계기로 교육과 연구학술 분야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대학원생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됐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A지역사립대 이공계열 대학원생은 “그동안 논문 심사비로 학생이 지출하는 돈만 100만 원 이상으로 대학에서 일괄적으로 걷어 교수들에게 줬다”며 “관례적으로 해왔던 고가의 선물이 더 큰 문제다. 석사생은 3명 이상의 교수들에게 각 10만 원 상당 선물과 함께 제본한 논문을 주는 게 관례고, 박사생은 교수만 5명 이상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이런 관행이 엄격히 제한되고 교수들 역시 법을 인지하고 이 같은 관행을 꺼린다면 긍정적인 효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다만 그동안 관행적으로 오랜 기간 유지된 제도이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는 않으리라는 시각이 있다. B사립대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당장 김영란법에 의해 불법요소가 되니 다행이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 있어도 이미 관행적으로 오랜 기간 유지돼 있었기에 자리 잡는 데 오래 걸릴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또한 “외부 심사자 거마비와 관련해 많은 대학들이 제도적으로 받쳐주지 못한다”며 “논문 심사비를 인상하거나 지원하는 등 현실화 방안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사학비리 척결에도 진전이 있을 것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통계서비스에 의하면, 2014년도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대학은 국·공립 대학 35개, 사립대학 154개로 총 대학의 80%가 사립대학이다. 이 대학들은 교육부가 인정한 기관평가인증을 받아야 하며 인증을 받지 못한 대학은 재정지원을 신청할 수 없다. 또한 교육부는 대학을 감사해 위반내용 및 조치결과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올해 대학들이 고등교육법 등을 위반한 건수는 벌써 100여 건이 넘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육부의 지도·감독으로 사학비리를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영란법이 적용되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김영란법이 사학비리를 근절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환영의 입장을 나타냈다. 전교조 측은 “사립학교도 굉장히 공공성이 강한 영역”이라며 “국민의 지원을 받고 있는 한 사립학교 교직원도 공무원에 준하는 기준을 적용받아야 한다”고 평가했다. 박 이사장 역시 “사립학교 이사장이나 이사가 단독으로 부정부패를 행할 수 없는 만큼 체계적으로 사학비리를 잡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교비를 개인재산으로 굴리며 땅 투기하거나 교직원 채용에서 뒷돈을 받는 등의 비리가 아직도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김영란 법을 통해 형사처벌되면 교육부도 사학비리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립학교에 대한 김영란법의 적용, 부정적인 의견도 존재해 

  한편 교수와 직원이 포함된 것에 대해 공직사회의 청렴이라는 김영란법의 원래 취지와 어긋난다는 우려도 나왔다. 중앙대 법학과 이인호 교수는 “물을 맑게 하기 위해 잔챙이까지 쓸어 담는 것 같다. 윗물이 깨끗해야 아랫물도 맑아진다. 김영란법이 집중해야 할 대상은 윗물, 고위공직자다”라고 말했다. 

  김영란법의 허용범위가 불분명해 행동에 제약이 따를 것이란 우려가 가장 크다. 이 교수는 “금품수수가 정당한지, 부정한지 구분하는 게 명확하지 않다. 졸업한 제자가 선물을 가져오는 경우, 100만 원 이하라도 과태료 대상이다. 금품을 받았다고 일일이 신고하기도 애매하다”라고 지적했다. 자칫 위반사항이 많아 법을 집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법의 권위를 잃게 된다는 말이다. 

  또한 과잉입법에 대한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김영란법이 합헌임이 밝혀지자 한국교원총연합회는 “교원은 이미 관련 법령에 따라 금품·향응 수수로 징계를 받으면 승진이 제한되며, 서울시 교육청의 경우엔 10만 원 이상의 금품·향응을 받는 교원은 해임 또는 파면의 대상이 되는 등 엄격한 규정이 적용되고 있다”면서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중처벌 등 과잉입법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영란법 상의 기준과 교육공무원 징계양정 등에 관한 규칙, 시·도교육청의 방침 간 차이에 따른 혼란이 없도록 공통된 기준을 만드는 등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립대를 운영하고 있는 총장들의 의견은 갈렸다. C사립대 총장은 이번 합헌 결정에 대해 “사립대 교직원까지 김영란법을 시행하는 것은 시대적 상황에서 너무 경직되고 긴장된 것”이라고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부정부패를 없애려다 사회가 경직돼 성장속도에 지장을 주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고 밝혔다. 

 

  현재 대학들은 김영란법 대비 준비 중…앞으로 비리·부정 감시자의 역할에 관심 주목돼

  김영란법 시행이 확실시됨에 따라 대외 공공기관과 산학협력 기업체, 언론인을 대응하는 실무부서의 관행도 바뀔 전망이다. E사립대 홍보담당자는 “선물이나 접대에 있어 확실히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아마 홍보용 선물을 주더라도 언론인들이 받지 않을 것이고, 명절 선물도 적어지는 등 당분간 긴장감이 흐를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지역 대부분의 대학들은 지난달 29일(월)부터 교수회의와 직원회의 등을 통해 김영란법에 대비한 교육을 진행했다. 교육은 강의 청탁을 비롯해 출결관리는 물론 구매 등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처럼 대학마다 시행령을 기반으로 한 교직원 교육 계획을 세워놓고 있지만 그동안 불문율처럼 여겨졌던 각종 불합리한 관행에 대한 지침은 없어 보다 구체적이고 통일된 매뉴얼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정부는 김영란법 시행령에 이어 각종 사례를 담은 해설집을 각 기관에 배포했지만 여전히 현실적으로는 애매한 점이 많다는 것이 대부분의 견해다.  

  혼란이 가중되는 대학들은 결국 김영란법 위반 여부를 누가 어떻게 감시하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는 “촌지 등은 자정작용이 일부 된 상태이고, 논문심사나 교수 채용 시 비리도 범죄 행위로 각인된 상태이기 때문에 김영란법이 권력층 눈 밖에 난 언론이나 학자 등 비판세력을 표적수사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우려도 있다”면서 “결국 이 법으로 검·경찰 등 사법권이 더욱 세져 평등권 침해, 언론권 위축 등의 문제가 야기될지 모른다”고 경계했다. 

  법 시행과 함께 감시를 맡는 기구가 대학당국과 구성원 모두를 감시·경계하는 독립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학 내의 자정작용이 필요한데 교내 감시기구인 대학평의원회나 교수단체의 위상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보는 견해가 많기 때문이다. 박 이사는 “자체적으로 학내 감사실을 둔다고 하더라도 학내 구성원을 감시하는 기구로 전락하지 못하도록 자치기구가 학교당국을 함께 감시할 법적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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