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조와 뜀박질을 상스럽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고종은 1895년 갑오개혁 당시 반포한 교육입국조서에서 인재양성 및 국가부강의 요체로 지(智)․덕(德)․체(體)를 내세웠고, 이때부터 근대 체육교육이 시작됐다. 한편, 선교사들은 일찍부터 각종 스포츠를 도입하여 보급했고 이와 함께 기독교계 학교에서는 체조를 교과목으로 채택하여 근대 체육의 저변을 확대해갔다.

  숭실도 일찍부터 체조 교육을 실시했다. 1901년 정규교육과정에 체조를 포함하여 매주 진행했는데, 담당교사는 블레어(W. N. Blair) 선교사였다. 여기에서의 체조는 체육 일반을 교과목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이다.

  대한제국기의 근대 체육은 기독교계 학교를 중심으로 한 교과목 채택과 더불어 학교운동회와 학교 간 연합운동회 형태로 확장되어 갔다. 학교운동회는 학생과 교수가 주축을 이뤘지만 실제 수많은 지역민들이 참여함으로써 탈학교적 성격을 띠었으며, 일반인들에게 근대 체육을 보급하고 지역의 일체감 형성에도 기여했다. 따라서 지역 공동체의 축제의 장이자 민족 연대감 형성의 장이 되었다.

  1909년 4월 30일 숭실중학․대학 연합 운동회가 개최됐다. 평양시민 수천 명이 운동장에 운집한 가운데 열린 이날의 운동회는 400m달리기, 40야드 단거리 달리기, 달걀 굴리기, 높이뛰기, 목발 위에서 달리기, 계주, 하이킥(높이 발차기), 야구, 소방훈련 등 총 아홉 종목으로 치러졌다. 비록 학생들이 체계적인 체육 교육을 받고 기량을 뽐내는 운동회는 아니었지만 수많은 관중 앞에서 열정적으로 운동장을 누비었다. 1908년부터 시작되어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된 숭실 운동회는 학생들의 심신발달 도모와 체력 연마를 기본 목적으로 시작됐지만 숭실만의 행사가 아닌, 평양시민의 축제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숭실 운동회는 매년 4~5월 봄에 개최되었는데, 1920년대 중반부터는 가을운동회로 바뀌어 개교기념일인 10월 10일을 전후한 개교기념 행사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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