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 항쟁,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실이다. 글이나 사진 혹은 영화를 통해 그날의 참상을 종종 접했으나 이 책을 읽고 느껴지는 먹먹함과 슬픔은 한층 더 적나라하다. 등장인물의 치가 떨리는 통각은 작가의 언어를 통해 곧 나의 통각으로 치환된다. 그런 아픔의 책이다.

  빗발치는 총알과 찢어지는 고함을 가로질러 두 눈을 감고 살이 뚫리는 감각을 잊는 날들이 보인다. 흙빛 살결이 숯덩이가 되고 그들은 죽음으로써 의미가 된다. 오히려 죽음만이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죽음, 마지막 최고의 고통의 순간 생에 가장 큰 의미와 함께 희미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죽음 앞에 당당하다.

  어떤 이의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에겐 아직 죽지 않은 지옥이다. 미움 없는 살인과 그것에 대한 미움의 끝없는 교차 뒤에 또 다른 폭력이 이어진다. 피 묻은 곤봉으로 두드리며 땀에 잔뜩 젖은 살결에 총구를 겨눈다. 심지어 슬픔으로 겨눈다. 죽음 앞에 놓인 소년은 울상조차 지을 수 없다. 이념을 위해 자신을, 생명을, 죽음을 같잖게 여기며 굳건한 얼굴로 민주주의를 부른다. 그 죽음을 본 이들은 분노에 소리쳤다. 왜 그를 죽였느냐고 소리쳤다. 갈라지는 살결 틈새로 우는 얼굴이 보인다. 모두가 우는 얼굴을 보인다.

  어떤 이의 살은 이미 그의 것이 아니다. 잔뜩 뭉그러졌다. 어제까지 힘차게 움직이던 피는 흑백 바닥에 눌러 붙어 끈적인다. 모두 끝난 후엔 부끄러움과 후회, 그리고 침묵이 시작되고 기억이 목을 죈다. 3일 전 들었던 포탄의 소리는 이명으로 남아 심장을 두드리고 어제 맞아 부러진 팔은 아프고 싶지 않다. 눈가에 쌓인 눈물이 세상의 윤곽을 일그러뜨린다.

  그날의 아픔을 읽은 뒤, 끊임없는 이명과 통각을 지나치고 피가 물든 거리를 끝까지 걸으며 구역질을 참았다. 한심하게도 고작 그게 전부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기억했을 때, 참으로 부끄럽게도 이미 생명도 없이 죽은 목 소리의 <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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