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회 김현승 문학상 수상작 발표

  본교는 지난 8월 29일(월)부터 지난달 9일(금)까지 김현승 시문학상을 공모했다. 김현승 시문학상은 평양 숭실의 학사 출신이자 서울 숭실의 문리대 교수였던 김현승 시인의 유족들이 그의 문학정신과 민족의식을 기리고자 만든 상이다. 이번 김현승 시문학상은 본교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학과가 주관해 개최했다. 주제는 자유 주제였으며 심사는 △광주대 문예창작과 이은봉 교수 △숭의여대 미디어문예창작과 강형철 교수 △본교 국어국문학과 엄경희 교수가 했다. 당선작 1명에는 150만원, 가작 2명에게는 각각 7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김현승 시문학상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된 것으로 총 51명의 학부와 대학원생이 참여해 15명이 본선에 올랐으며 그중에서 3명의 작품이 수상작으로 뽑혔다. 당선작은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4학년에 재적한 원수현 양의 <누구나 이미 그러한, 그러나 유일한>이 뽑혔다. 또 가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4학년에 재학 중인 허승화 양의 <입춘에서 경칩까지>와 본교 문예창작학과 3학년생인 윤영은 양의 <잃어버린 장미>가 선정됐다.
 
 
 
당선작
누구나 이미 그러한, 그러나 유일한
 
 원수현(광주대·문예창작)
 
 
아버지는 비가 내리면 쏴- 하고 울었다
시간이 흐르면, 흘러갈수록
앙상하게 말라 사라져버릴 네 흔적들 때문에
어머니는 비가 내리지 않아도 울었다
너의 이름을 불러
허공에 박혀 새겨질 정도로 울어도
떠내려가는 기억들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에
 
온 몸을 부딪쳐 흰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소리보다
너를 찾지 못한 부모의 절규가 더 컸다
부모들이 바다를 향해 큰 소리로 외칠 때마다
굵고 매서운 빗방울은 너의 이름을 집어 삼키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꽃들로 둘러싸인 삼백 개의 영정사진을 보았나
 
빗방울을 그렇게 집어 삼키고도 바다는 울지 않았다.
나는 노을이 질 때에도 붉지 않은 바다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 의문을 제기할 때마다, 검은 눈을 한 바다는 흰 입술을 소리 내어 다물었다
죄를 지은 자, 벌 받을 것이다. (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돌려줘라 -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면 그 외침을 처음 들었던 날
나는 또 다른 죄를 지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꽃잎 위에 매달려 있던 빗방울은 어김없이 아버지의 심장으로 내리꽂혔다
공허한 허공을 쓸고 내려오며 날카롭게 갈려진
빗물이 불시에 찢어발기는 아버지의 가슴을 기우기 위해 자식들은 누덕누덕 바다로 뛰어들었다
 
 
수상소감
 
원수현 양
  이 시의 모티프는 세월호 참사에요. 당선작을 쓰기 전에 희생자분들이 안치되었던 분향소에 방문했던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꽃송이보다 많던 영정사진에 압도됐어요. 이 사건에 대해 절대 잊어선 안 되겠다는 마음을 갖고, 시로 기억을 남기자는 생각을 했어요.
시를 쓰고 난 뒤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 하나에 몇십 번의 퇴고를 걸쳐서 완성하게 됐는데 그 시가 운 좋게 당선돼서 기분이 좋기도 하고 동시에 수상작으로 오래 남을 수 있단 점에서 의미가 있게 느껴져요.
 
 
 
가작
 
입춘에서 경칩까지
 
허승화(한예종·영화과)
 
집은 늘 얼어 있었지
지붕 꼭대기까지 추위가 스며들어
친구야 우리집 가자 할 수 없어서
친구야 너희집 갈게 하는 애가 되었지
 
언니는 아무 것도 모르고 친구 데려와 노는데
나는 방에 있네
 
언 바닥에 몸 비비며 이불을 덮고 우네
눈물과 오줌이 따뜻한 걸 알아서 우리가 우네
 
추위가 밥그릇마저 얼려놓으면
우리는 눈처럼 소복하게 쌓인 찬밥을
하늘에서 내린 양 후후 불어 먹을 것이다
 
입 안이 어는 줄도 모르고 입김 내어
따뜻한 것이 좋다고 콧물 흘리며
씹어 먹을 밥이 내리는 하늘
 
위를 쳐다보면 살아있는 것 같아, 언니
 
언니는 내 말도 안 듣고
친구랑 노네 놀다가
딱딱하게 어네
 
언집에 언니가 얼어 있네
 
언젠가
날이 따뜻해지면 우리는
녹아 사라질 거야
흘러 갈 거야.
 
 
수상소감
 
허승화 양
  저는 고등학생 이후부터 몇 년 동안 시를 쓰지 않았어요. 영화과에 입학했기 때문에 시작할 생각이 잘 들지 않았거든요. 최근 들어서야 일상에 지쳐 시를 다시금 쓰게 되었는데 이렇게 수상을 하게 되니 기분이 좋고 또 격려되는 것 같아서 이번 행사에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가작
 
잃어버린 장미
 
윤영은(숭실대·문예창작)
 
  골목엔 스쳐가는 것들뿐 환상에 대한 말들이 많았지 너는 우화를 좋아했지만 이곳에는 고양이밖에 없었고 방랑별에 대해서는 깨진 가로등에게 물어보기로 해 담벼락 위를 거닐 때마다 별들은 밟혀 터지고 명멸되기 쉬웠지 죽은 쥐의 시체가 어디에 버려졌는지 알 수 없는 밤이었고 터진 쓰레기봉투에서 잃어버린 장미가 쏟아져 나왔어 바닥을 핥는 바스테트의 혀에서 가시가 돋아났지 아무도 아파할 수 없었어 진물 흘리는 새벽 속에서 발정 난 것들은 신음하는데 장미는 영영, 시들지 않을 것 같아 잃어버렸던 것들로 화관을 만든다면 참 예쁠 것 같다고 너는 말했지 하지만 그것을 쓰기에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마치 신 같았지 그래서 구더기들은 붉은 귓바퀴 속에서 오래오래 살 수 있었어
 
네가 검은 실 뭉치를 토해낼 때마다 온 골목에 장미가 폈어
 
이것도 스쳐지나가는 것뿐이야
 
 
수상소감
 
윤영은 양
  저는 종종 시를 쓰는데 제 시는 항상 자의성이 강했어요. 어떤 사회적인 문제나 공감할 만한 이념에 대해 다루기보단 제 개인적인 일상과 의식에 대한 감성을 주로 다뤘던 시가 많았죠. 그래서 이번 시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엔 조금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걱정이 됐어요. 그런데 이번 시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건 심사위원분들이 제 시어를 이해해주셨다는 것 같아요. 제 언어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닿을 수 있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심사평
 
  제2회 김현승시문학상 응모작 심사는 깊이 있는 생각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표현의 참신성, 상상력의 활달함 등을 기준으로 이루어졌다. 우선 이번 응모작들로부터 과감한 실험이나 독자적 형상화 방식을 발견하기 어려웠다는 점이 무엇보다 아쉬웠다. 창작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이미 존재하는 여타의 것을 뛰어 넘어 새로운 영역을 드러낸다는 데 있다. 그 새로움은 생각과 미의 확장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새로운 미적 세계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미의 전통을 깊이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새로움은 없었던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것을 성찰하는 가운데 탄생한다. 미적 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성찰적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올 당선작으로 선정된 원수현(광주대 문예창작 4학년) 양의 「누구나 이미 그러한, 그러나 유일한」은 세월호 사태를 제재로 한 작품으로 그 언어가 뜨겁고 호소력이 강하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감정의 노출이 심하면 절제미를 잃을 수도 있는데 원수현 양의 시는 풍부한 감정 표현과 절제미 모두를 성공적으로 실현한 것으로 판단된다.
 
  가작으로 선정된 허승화(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4학년) 양의 「입춘에서 경칩까지」는 명료한 주제의식을 간결한 언어미로 드러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선정된 시와 더불어 응모한 작품들을 볼 때 시적 대상의 폭을 보다 확장할 필요가 느껴진다. 허승화 양의 시와 함께 가작으로 선정된 윤영은 양의 「잃어 버린 장미」는 사물의 이면을 꿰뚫는 감수성이 탁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감수성을 보다 자신감 있게 드러내도 좋을 듯하다.
 
  선정된 시 외에도 이현정(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학예술콘텐츠 박사과정) 양, 이서진(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과 3학년) 양, 서지은(순천대학교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양, 김수진(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4학년) 양, 김남주(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3학년) 양, 김주희(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3학년) 양 등의 시편이 심사위원의 관심을 끌었다.
 
  올해 응모한 모든 문청들의 열정이 앞으로도 지속되길 소망하며 그 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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