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예테보리에서 덴마크의 프레드릭스하운으로 가는 여객선 위에 있다. 여객선 안에 면세점이 없었다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배 안의 식당에서 독일어 같기도 하고 러시아어 같기도 한 스칸디나비안 언어들이 마구 섞여 날아다닌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3개국 사람들은 서로의 언어를 반 이상씩 알아듣는다니 ‘언어 효율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3개 외국어를 기본적으로 먹고 들어가는 셈이 된다. 북해의 찬바람을 갑판 위에서 느꼈나 싶더니 벌써 프레드릭스하운 항구에 도착했다고 안내 방송이 나온다. 

  후진국과 선진국의 차이는 불안감의 정도라고 생각한다. 후진국에서는 어느 곳에 있어도 무슨 일을 당할지 걱정하게 되는데, 선진국에서는 어디에서도 그런 두려움이 없다. 모든 것이 원칙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원칙이 없는 조국에서 살아왔던 나였기에 덴마크에서의 원칙은 참으로 소중하게 여겨진다. 프레드릭스하운에서 버스를 타고 목적지인 올보그(Ålborg)에 도착했다. 여객선을 운행하는 사람과 버스를 운전하는 사람, 표를 파는 사람,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신뢰’라는 단어로 똘똘 뭉쳐진 것 같은 이 느낌은 무엇인지. 
  올보그는 2015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선정한 ‘시민이 가장 행복한 도시’다. 대통령, 총리, 시장, 장관, 고관대작들이 가장 행복한 도시가 아니라 시민이 가장 행복한 도시. 세금을 내는 시민이 가장 행복한 것은 참으로 당연한 말임에도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언제나 시민은 순위가 밀렸다. 국민을 동물에 비유한 고위직 공무원이 있는 나라다 보니 가장 큰 원칙이어야 할 것들이 ‘이상한’ 권력자들에게 농락당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 원칙은 서로를 신뢰하지 않으면 지켜지지 않는다. 올보그 시민의 96퍼센트가 삶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고 하니 이 도시야말로 신뢰를 바탕으로 원칙이 지켜지는 곳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우쭐해 보이려는 사치품도 아니고 남들을 제치고 앞서 나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 도시는 도시의 분위기 자체로 말한다. 
  덴마크 말에 ‘휘게(Hygge)’라는 말이 있는데 단순한 안락함, 아늑함을 넘어 평등, 화목, 서로를 격려하는 따스함을 내포한다고 한다. 자신의 소득에서 최저 38퍼센트, 최고 65퍼센트를 세금으로 걷어가는 나라지만 휘게가 있으면 그들의 행복지수는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세금이 과연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갈까를 걱정하는 나라에서는 절대로 휘게라는 개념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내 세금이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값비싼 말을 사용하는 비용으로 사용된다면 그 누가 세금을 내겠는가.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 안에서도 가장 행복한 장소 올보그에 왔다는 것이 생소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라면 인간은 특정한 장소에서 공존할 수밖에 없다. 공존의 조건은 수권(授權)받은 사람들의 책임 있는 역할과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며 지켜나가는 원칙이다. 올보그는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대한민국이 현재 직면한 웃지도 못 할 상황에 큰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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