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어요] - 제3세계 아이들를 돕기 위해 차를 끓이는 최소영(환경화공ㆍ2) 양을 만나




매주 화요일이면 민주로에서 인도차 ‘짜이’를 따라주며 인도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사람이 있다. 지난 겨울 인도로 봉사를 다녀온 이후 학내에 짜이집을 열어 해외 구호를 위한 모금운동을 하고 있는 최소영(환경화공ㆍ2) 학생이다.


인도와 짜이에 대한 이야기는 유럽에서 시작한다. “입학하고 나서 맨날 술 마시고, 열심히 놀았어요. 여름방학 때 유럽을 가서도 목표는 거기 맥주를 다 마셔보는 거였구요.” 낭만 가득 시작했을 유럽여행을 다녀오니 남는 것은 사진뿐이었고 허탈했다.

그 때 그를 잡아끈 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내건 인도봉사 포스터였다.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아서 바로 신청했다는 그는 웃으며 당시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냥 며칠 봉사하고 여행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하면 절대 못할 거예요. 곡괭이랑 삽 들고 땅 파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일도 힘들었지만 봉사활동 지역은 ‘둥게스와리’라는 마을로 불가촉천민이 사는 곳이라 관광객들의 출입이 아예 금지된 곳이었다.

학생이 대략 1천명정도 되는데, 가르치는 사람이 많지 않아 보통 오전에는 고학년이 저학년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다시 고학년이 수업을 받으러 온다. 그가 활동한 단체에서는 교복도 나눠주고 점심도 무상지원 했단다. “대부분 학교에서 주는 점심이 유일한 하루 식사예요. 불가촉천민이라 다들 일을 받지 못하거든요.” 농사를 지어도, 뭘 만들어도 불결하다고 사 가질 않아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돌을 부숴서 건축 자재를 만드는 일에 종사한다는 것이다. 하루종일 해도 1달러 미만밖에는 벌지 못한다고 한다. “근처에 불교 성지가 하나 있는데 거긴 마을과 달리 관광객이 와요. 그러니 아이들이 거기에 나가서 관광객들에게 구걸을 해요. 잘만 하면 아버지가 이틀 동안 벌 돈을 순식간에 벌 수 있으니 학교에 나가지 않고 거기만 매달리게 돼요.”

 결국 이 아이들이 성장해도 구걸밖에 할 줄 몰라 악순환이 된다. 교육밖에는 해결 방법이 없다. “학교에서 오렌지를 나눠주면 구걸하다가도 그걸 받으러 와요. 그 때 교육을 통해 구걸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죠.”

인도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던 그녀에게 가장 힘들었던 일은 ‘씻지 못했던 것’이었다. “봉사가 민폐가 되어선 안된다는 생각으로 그야말로 친환경적인 생활을 해야 했어요. 세수같은 거야 상관없었지만 머리감고 샤워하고 빨래하는 것은 3일에 한번 씩만 할 수 있었어요.” 물론 이 때도 샴푸나 계면활성제가 들어간 비누는 쓸 수 없었다고. 당연히 일회용품은 금지됐고, 빈 그릇 운동이라고 해서 밥 먹는 것도 한 그릇에 모든 음식을 담아 남기지 않고 먹어야 했단다.

 “처음에는 괴롭고 고달프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막 그곳 사람들한테 감사해져요. ‘이 사람들이 이렇게 지내서 내가 그동안 풍요롭게 살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남기고 버리는게 죄라는 걸 느꼈기 때문인지 돌아와서도 함부로 낭비하는 버릇을 없애려 노력중이라고 한다.

“모두 같은 사람이에요. 한국과 인도라는 ‘다른 나라’로 구분하지 말고 서로 돕는다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짜이집’도 그러한 도움의 일환에서 시작됐다. “제 3세계에 도움을 주면서 동시에 학내 쉼터를 만들고 싶었어요. 과자랑 짜이를 먹으며 얘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이요.” 보통 짜이 한 잔에 모금으로 500원 정도를 받는데 일단 돈을 내면 리필은 끊임없이 해 준다고. 반대로 짜이는 즐기지 않아도 오가며 꾸준히 모금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나온다고는 하지만 그 날은 하루종일 서 있어야 하니 힘들지는 않을까. “화요일 되기 전이면 두근두근해요. 내일은 또 누가 올까. 어떤 얘기를 할까. 그런 생각에 행복해져요.” 화요일에 쓸 우유나 과자는 그 전날 준비하는데, 보통 한 번에 7천원 정도 쓴다고 한다. 7천원으로 제 3세계 아이들을 돕는 즐거움을 누리며 한편으로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제3세계 아이들과 학생들을 연결해 주고 자신 역시 학생들과 교감을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짜이집이 ‘쉼터’같은 공간이 됐으면 하는데 단골들도 생기는 걸 보니까 서서히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아서 보람차요. 어떤 분은 모금보다는 과자에만 관심이 있기도 해요.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분이 안 보이면 괜히 허전해요. 짜이집을 하면서 얻는 ‘사람’을 만나는 행복이 참 큰 것 같아요.” 요즘은 유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단다. “그 때문인지 제 모습도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제가 과 부회장 활동도 하는데 전에는 굉장히 다혈질이란 평이 많았어요. 또 많이 긍정적이 됐는데, 생각할 때 ‘짜이집도 즐거우니 이것도 그럴거야’라고 마음을 먹을 수 있게 됐거든요.”

학생들에게 혹시 하고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줬으면”이라 말하는 그녀는 ‘그 전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답게 보람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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