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 어린 나이지만 자신의 글에 확고한 철학을 담는 학생이 있다. 바로 페이스북 인기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의 운영자 김경수(문예창작·15) 군이다. “책을 읽고 생각해본 뒤 거기서 얻은 통찰로 세계를 바라본다면 세계를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세상이 이런 방식으로 돌아가는구나가 느껴져요. 사실 룰을 하나씩 알아갈수록 세계는 재밌어지는 법이잖아요?”라고 답한 그는 인문학, 철학을 즐길 줄 아는 학생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페이스북에서 인문학적 개소리라는 페이지를 운영 중인 문예창작학과 15학번 김경수라고 합니다. 사실 제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엔 인터뷰를 망설였지만 제 인생 처음으로 주목받는 느낌이라 하게 됐어요.

  먼저 운영 중인 ‘인문학적 개소리’ 페이지를 소개해 주세요.

  인문학적 개소리는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B급 문화들을 가져와 인문학적으로 분석한 글들을 올리는 곳이에요. 대부분 우리가 쉽게 접하는 영화나 만화들을 분석하고 정치인들의 발언을 풍자하거나 희화화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예전에 안상수 전 국회의원이 보온병을 들고 포탄이라고 실수한 적이 있는데 이 발언이 사실 시적인지를 이야기하며 이 국회의원의 무지에 대해 풍자해요. 어떻게 보면 웃으라고 하는 이야기죠. 이런 것들 외에도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괴상한 소재는 다 찾아봐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페이지를 운영하기 시작한 건가요?

  저는 재수를 했어요. 수능을 마치고 강남으로 문예창작학과 실기 학원에 다닌 적이 있는데, 집이 파주라 학원까지 왕복 4시간이나 걸렸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어요. 그러던 중 문예창작이나 철학 전공을 준비하는 친구들끼리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재미있는 글이 될 수 있는 소스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만화 스펀지밥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스펀지밥이야말로 니체 철학을 담고 있는 만화가 아니냐는 가벼운 대화를 나눴어요. 처음에는 니체 철학에 대해 잘 모른 채로 이런저런 논쟁이 오가다가 본격적으로 철학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 지식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글을 썼죠. 그러다 보니 스펀지밥 외에도 여러 만화 캐릭터에 철학이나 인문학을 접목해 리뷰를 쓰기 시작했고 이를 재밌게 읽은 친구들의 권유로 페이지를 만들게 됐어요. 내가 쓴 글을 올리자고 시작한 페이지가 꽤 많은 사람한테 이렇게나 주목을 받을지는 상상도 못 했어요. 게다가 정확히 어느 순간부터 인기가 생긴 건지 알지도 못해요. 그냥 재미있는 글을 꾸준히 올리다 보니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많은 글을 써오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 있나요?

  허니버터칩이 유행하던 시기에 뭐만 하면 허니버터라 붙이던 시국을 비판한 글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당시 엄청난 인기였던 허니버터칩은 워낙 구하기가 힘들어서 하나의 환상이나 신화처럼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은 뭐만 하면 허니버터라는 단어를 붙였고 저는 이 현상을 비판했어요. 하나의 고유 명사에 허니버터라는 이름이 붙음으로써 그 단어의 본래 모습이나 특성을 왜곡하고 가리기 때문이죠. 우리 학교 이야기도 썼어요. 우리 학교는 꿀벌을 연구하시던 교수님 연구동에서 꿀벌들이 새어 나온 적이 있는데 이를 이유로 허니버터대학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사실 이러다가 모든 사물에 허니버터가 붙는 게 아닐지 상상해 봤는데 그 열풍은 금방 사라지더라고요.

  글 쓰는 일이나 독서를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고등학교 때부터 흥미가 있으셨던 건가요? 글 쓰는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어렸을 때 미술을 배웠고, 중학교 때는 재즈 색소폰을 전공했어요. 그렇지만 그것들은 제 인생을 단 한 번도 바꿔주지 못했어요. 콩쿠르에서 상도 타곤 했지만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그 무렵 저는 SF소설이나 세계명작 시리즈를 읽으며 제가 왜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했고 그런 고민 속에서 여러 소설을 통해 위로를 받았어요. 또한 고등학교 때 입시를 준비하면서 강압적인 공부 강요에 시달렸어요. 이런 환경 속에서 저를 위로해준 것도 역시 소설이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나를 위로해줬던 글로 누군가를 위로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글 쓰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죠. 요즘에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데, 글을 쓰다 보니 저 같은 사람이 덜 불행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들을 읽다보면 소설 뒤에 실리는 평론하는 글들이 있잖아요? 그 글들을 즐겨 읽다 보니 소설을 분석하는 이론에 관해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 외에도 관련 문학, 역사, 철학 이론서들을 접하게 됐고, 여기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덕분에 지금 페이지에서 어떤 현상에 대해 분석하는 글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저한테 글쓰기는 학업이나 과제가 아닌 놀이의 일종이에요. 그리고 글 쓰는 일은 나의 자유를 표현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들을 털어내고 정화하는 일로 생각하기 때문에 매력을 느껴요.

  수많은 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글도 있을 테지만 가장 아쉬웠던 글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힐링이나 멘토와 같은 단어들을 싫어해요. 그래서 이를 비판하는 글을 썼는데 제가 무리하게 논지를 가져오려고 하다 보니 전문 지식을 많이 사용했고 독자가 읽기에는 어려운 글이 돼 버렸더라고요. 정신분석학에서 타인들이 욕망하는 가짜 욕망에 파묻혀 자기만의 진정한 욕망을 찾지 못한다는 개념어들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힐링과 멘토를 왜 싫어하시는 건가요?

  힐링과 멘토는 사람이 느끼는 아픔과 괴로움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긍정적인 삶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아요. 즉, 사람들에게 각자 자기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거죠. 저는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맘껏 절망하고 우세요’라고 말하고 싶어요. 울고 있는 사람에게 울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사람이 울 권리를 빼앗는 또 하나의 폭력이에요. 그리고 저는 슬프면 맘껏 울고 힘들면 끝까지 내려가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낫더라고요.

  글을 쓸 때 어디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저는 일상이 모두 소재에요. 어떤 노래를 듣다가도, 어떤 만화를 보다가도 ‘저 노래는 왜 저런 가사를 가지고 있을까?’ ,’주인공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와 같은 의문을 가지거든요.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철학이나 인문학 이론을 접목해서 생각했고, 이걸 분석적인 글로 옮겨요. 그리고 문예창작학과는 과제가 많은데 과제를 하다보면 싫증이 나서 다른 생각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영감이 많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본인에게 인문학은 어떤 의미인가요?

  인생은 나에게 술 하나 사주지 않았다는 시를 패러디해 보자면 인문학은 저에게 돈 하나 주지 않았어요. 저는 학자금 대출이 500만 원이나 있고, 지금 생활비도 논술이나 자기소개서 첨삭해주는 아르바이트로 겨우 때워요. 사실 어떻게 보면 인문학을 공부해 봤자 돈도 안돼요. 하지만 제가 굳이 인문학을 곁에 두는 이유는 인문학은 저의 놀잇감이자 제 인생의 한 부분이거든요. 책을 읽고 생각해본 뒤 거기서 얻은 통찰로 세계를 바라본다면 세계를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세상이 이런 방식으로 돌아가는 구나가 느껴져요. 사실 룰을 하나씩 알아갈수록 세계는 재밌어지는 법이잖아요? 인문학, 철학하면 진지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저는 가끔 인문학을 농담하려고 공부하는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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