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모여들어 도시는 만들어 진다.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에는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어 물품이 거래되고, 도시를 통치하려는 사람들은 탁 트인 곳에 시청사를 세워 권위를 자랑하려 한다. 한 도시 안에도 잘 사는 동네와 못 사는 동네가 분리되어 각기 다른 문화의 형태가 발원(發源)한다. 심지어 가장 음습(陰濕)한 곳에는 이상하리만치 정확하게 홍등가가 구성되어 도시의 치부(恥部)가 된다. 도시에는 아름다움과 추함이 공존하고, 권력과 계층, 부귀와 빈곤, 욕망과 속죄가 섞여 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혼재되어 있는 도시라는 공간은 정말 종이 한 장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도시마저도 계층적인 순위로 순서를 매긴다.

  많은 도시를 여행하다보면 인생의 말년을 보내고 싶은 도시도 있고,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은 도시도 있다. 그러나 도시와 도시를 비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왜냐하면 지나간 것은 모두 추억이 된다는 말도 있듯이 지금까지 방문했던 도시들은 나에게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에피소드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선사해 주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의 다양성은 국가가 아닌 도시로 구분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국가가 아닌 도시 이야기를 쓴다. 문화를 국가가 아닌 도시로 잘라서 이해하면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고,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다.

  숭대시보의 의뢰를 받아 2012년 2학기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이都저都’ 여행 칼럼이 100번째 도시를 맞이했다. 이번 학기가 연재를 시작한 지 10번째 학기가 되는데, 여기에 100번째 도시까지 도달했다니 나로서는 작은 의미라도 부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 열 가지 복 중 아홉 개를 가진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천재의 도시 바르셀로나와 백야를 경험하게 해 준 헬싱키로 갔다. 고대 문명의 찬란한 영예를 지닌 룩소르를 거쳐 빈민가의 처참한 눈물을 품은 나이로비와 용맹한 마사이족의 근거지인 마사이마라에도 방문했다. 탱고의 선율에 몸을 흔든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천사의 미소를 짓는 로스앤젤레스, 황제의 권력이 느껴지는 베이징에서 한없이 느긋할 것 같은 루앙프라방, 군사 독재 정권도 무너뜨린 민주화의 열정이 피어오르는 양곤까지 힘든 여정을 계속했다. 그리고 마오리족의 혼이 느껴지는 오클랜드와 시대를 앞서가는 건축물이 돋보인 미항 시드니에 도착했다. 원래 그렇게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인 예루살렘에서 첫 번째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가장 근래에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오세아니아 대륙의 시드니가 100번째 칼럼 도시가 된 것도 나에겐 의미가 있는 일이다. 남극과 북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을 여행했다는 사실이 경이롭게 다가온다. 점점 나이를 먹어서인지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은 심정이다.

  작은 반성이라면 외국의 도시 이야기를 써 나가면서 정작 내가 사는 나라에 있는 도시들은 많이 다루지 못한 것이다.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문화적 메가시티 서울에서 시작하여 양반의 고향 전주, 빛고을 광주,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부산, 그리고 영원한 청정지역 제주도는 칼럼에 이름을 올렸다. 대한민국 다문화의 시험장 안산과 개화(開化)의 관문이었던 인천 또한 내 글을 빛내준 고마운 ‘주제 도시’가 되었다. 앞으로 글의 주제가 될 외국 도시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도시들은 점점 고갈되어 가니 더욱 더 분발하여 내 주변부터 여행해야 한다는 마음을 잡아본다. 손쉽게 여행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아직 안 가본 국내 도시들에게 큰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숭대시보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큰 고마움을 표시한다. 나의 졸고(拙稿)를 언제나 큰 인내심으로 읽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새 학기에는 꼭 그들과 맥주라도 한 잔 하면서 여행 이야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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