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특정 소리를 들으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따뜻하고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짓기도 한다. 이번 청춘예찬에서는 특정 소리를 듣고 각자의 추억을 떠올린 학우들의 사연을 담아 보았다. 독자들은 이 글을 읽으며 비슷한 추억에 공감할 수도 있고 자신만의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 비록 글로 쓰여 있어 소리가 들리진 않지만, 눈을 감고 그 소리와 풍경을 떠올려 보길 바란다.

 
  똑똑똑, 추억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 전우연(융합자유·17)
 
 고등학교 3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했다. 여러 명이 함께 살다보니 서로의 방에 방문할 때는 방문을 두드려야 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서인지 노크 소리로 들어오는 사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똑똑 조심스럽게 노크하는 사람, 똑똑똑똑 급하게 노크하는 사람, 쾅쾅 주먹으로 두드리는 사람, 노크 소리마다 그들만의 느낌이 전해졌다.
 
 지금도 노크 소리를 들으면 누군가 날 찾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급하게 들리는 노크 소리에서 속상한 이야기를 하러 온 친구가 생각나고 경쾌한 노크 소리에서 맛있는 것을 나눠먹자던 룸메이트가 생각난다. 기숙사 생활이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함께한 친구들 덕분에 즐거운 날은 더욱 즐거워졌고, 슬픈 날에는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그들과 함께한 순간순간이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기억이다.
 
 할머니의 따뜻한 목소리 박천용(기독교·16)
 
  얼마 전 9호선 지하철을 타고 통학하던 길이었다. 나는 흔들거리는 만원 지하철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을 피해 겨우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저 자리가 나는 대로 우르르 움직이는 기계 같았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차가운 가면을 쓴 양 서로에게 무관심했다. 항상 보던 광경이지만 그날따라 웬일인지 움직일 공간조차 없는 지하철이 더더욱 갑갑하게만 느껴졌다. 
 
  갑자기 앞에 앉아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나에게 손짓하셨다. 그리고는 “얘야, 힘들진 않니? 내가 자리를 양보해 줄게”하고 물으셨다. 아무래도 북적이는 곳에 서 있기 힘드실 것 같아 거절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 후로도 계속해서 나를 걱정해 주셨다. 할머니의 배려는 차가운 표정을 한 사람들 틈에서 일말의 온기로 와 닿았다. 나의 굳은 마음은 할머니 덕에 녹아내렸다.
 
부엌에서 들리는 사랑의 소리 안재현(경제·16)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소리가 있다. 프라이팬에 음식 굽는 소리, 도마 위에 칼질하는 소리, 냉장고를 열고 닫는 소리, 모두 주방에서 나는 소리다. 나는 초등학교 때 학교에 가는데 1시간 반이 걸렸기 때문에 또래 친구들보다 일찍 일어나야 했다. 1분이라도 더 자고 싶었지만 항상 주방에서 들리는 달그락 소리에 잠에서 깨곤 했다. 그때 나는 그 소리가 미웠다. 그 소리 때문에 내가 잠을 더 잘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나는 대학생이 됐다. 돌이켜보면 그때 주방에서 나던 소리는 어머니의 소리였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아침을 차리기 위해 365일을 나보다 먼저 일어나셨다. 이제 나에게 주방에서 났던 소리는 더 이상 미운 소리가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따뜻한 소리다.
 
  풀무 도는 소리 한재희(경영·10)
 
  내 키가 1m를 갓 넘겼을 때 나는 친가에 내려가 동생들과 뛰어노는 것이 참 좋았다. 한참을 놀고 나면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 채로 손에 호일을 가득 들고 가운데 방으로 향했다. 그 방엔 항상 고구마가 한 상자 놓여 있었다. 우리를 위해 매번 누군가 채워 놓으시는지 올 때마다 고구마는 양이 줄지 않았다. 저마다 맘에 드는 크고 작은 고구마 서너 개를 품에 안고 아궁이로 향했다. 솥엔 물을 담고 아궁이엔 불을 떼기 위해 장작을 넣었다. 준비가 끝나면 신문지와 싸리나무에 불을 붙여 구멍에 넣었다. 그리고 불이 꺼질까 깊숙이 주둥이를 처박은 풀무에 힘을 가했다. 
  ‘팽그르르르르’
  옛 부엌 창고를 채우는 것은 풀무 도는 소리와 허연 연기였다. 불은 진작 붙었지만 우리는 고구마가 조금이라도 일찍 익을까 싶어 풀무질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순수했고 미워하는 것이 없었던 그 시절이 가끔 몹시 그립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시는 풀무 손잡이를 잡고 돌리지 못할 것 같다. 까맣게 그을린 그것이 내 손때를 탈까 겁이 난다.
 
  엄마의 노랫소리 신동준(사회복지·12)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 자라면서 많이 들었기에 특별히 외우지 않아도 절로 가사가 흥얼거려지는 노래다. 어렸을 때는 유행가처럼 신나지도 않는 그 노래가 참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 노래를 들을 때면 항상 밝게 웃으셨다. 지금도 가끔 거리에서 그 노래가 들려오면 엄마의 환한 웃음이 떠오른다. 귀는 눈을 대신할 수 있다고 한다. 소리만 들어도 엄마의 웃는 얼굴이 보일 때 나는 참 행복하다. 그렇게 촌스러웠던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리가 된 것이다.

  누군가에게 좋아하는 음악이 뭐냐고 묻는 것은 그의 추억을 묻는 것과 같다. 그 음악이 가진 선율이 아니라 그 음악에 담긴 추억을 묻는 것이다. 멜로디가 좋아서 생각나는 사람이나 가사가 생각나는 사람, 누구든지 그 음악과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을 마음속 한구석 상자에 보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엄마의 추억을 꺼내 듣고 싶어졌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