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촉각적인 것이다. 편지는 글로써 연인의 손을 만지는 것이다.” -미셸 러브릭 『사랑은 예술이다』

  내게는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애인이 있었다. 불규칙한 만남 속에서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사랑에 빠졌다. 작별 인사도 없이 어느 순간에 늘 꿈에서 깨어버리곤 했다. 꿈에서 깨면 모든 순간들이 인어공주 동화처럼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몽롱한 얼굴로 그의 온기가 남아있는 품을 꼭 끌어안으며, 내 하루는 외롭게 시작되곤 했다. 나는 그 사랑이 한순간이라도 영원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꿈속에서 우리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사랑의 밀어를 주고받았다.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처럼 우린 온몸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했다. 깨어난 직후엔 우리가 나눴던 순간들을 종이에 적어두었다. 우리의 손엔 늘 펜과 종이가 쥐어졌다. 사랑을 적어가면서 우리는 서서히 물거품을 지워나갔다. 나는 꿈속의 연인, 그리고 이미 물거품이 되어버린 많은 이들에게도 편지를 써나갔다. 펜은 곧 누군가의 한 세계, 손이 되었다.

  사랑에 빠진 인어의 손에 펜이 쥐어져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매일 아침, 그녀는 목소리와 맞바꾼 두 다리로 힘껏, 우체국을 향해 달려갔을 것이다. 어느 아름다운 밤에, 함께 춤을 추자고 용기를 내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거품으로 사라졌을 마음들이 예쁜 편지를 통해 오래도록 남았을지도 모른다. 한 번 글자로 쓰인 마음만큼 진솔한 고백은 없다. 상대를 생각하면서 한 자 한 자, 문장을 써내려가는 순간에 나는 가장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사랑은 연필로 쓰라던 노래를 들으면서 이제는 얼굴조차 기억할 수 없는 누군가를 떠올린다. 사랑은 혀끝에서 녹아 사라지는 아이스크림 같다. 한 걸음씩, 온 다리가 녹아 사라질지도 모르는 길을 조심히 걷는 것이다. 사랑을 하는 이들의 손가락에 쥐어진 보이지 않는 펜. 나는 오늘도 전할 수 없는 편지를 써내려간다. 점점, 물거품이 되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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