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實行) or 실행(失行)




지난 2일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의 재정경제부에 대한 국정 감사에 출석하여 대학 등록금 후불제 제도를 내년도 경제운용항목에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를 언급한 재정경제부는 교육부 및 대학부와 심심치 않은 의견 차이가 생기고 있다. 제도의 실효성 여부를 두고 주무부처간의 이견이 일어나는 것이다.
‘대학등록금 후불제’는 학생들에게 큰 공감을 얻을 수밖에 없는 사안이기에 그 현안의 실효성 여부를 두고 진행 과정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번 끓어올랐다 식어버릴 발언인지 아니면 실효성의 판단에 따라 정책적으로 실시될 문제인지에 대해 한번 짚어보도록 하자.
편집자




졸업 후 소득생기면 갚도록

‘등록금 후불제’란 말 그대로 정부가 대학생들의 등록금을 먼저 내주고 대학생이 졸업 뒤 취직을 해 소득이 생기면 갚는 제도이다. 최규연 재정경제부 대변인은 지난 6일 정례브리핑에서 “등록금 후불제의 정확한 명칭은 소득연계 학자금 대출 제도이며 이 제도는 학자금 대출 후 본인이 취업해 소득이 일정 금액 초과하는 시점부터 대출금과 이자를 상환하는 방식으로 영국에서는 연소득이 원화 약 2800만원을 초과한 시점부터 상환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즉 정부가 2005년 8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은 대출시점에 상환시점과 이자가 결정돼 대출자의 상환능력이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제도와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행 학자금 대출제도는 졸업 후 사전에 정해진 원금 상환 방식에 따라 돈을 갚아야 하는 것과는 달리, 등록금 후불제는 어느 정도 소득이 생긴 뒤 소득의 일정 비율씩 갚는 맞춤형 설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호주, 대여장학 프로그램
‘HELP’ 제도 시행


한국일보 11월 13일자 기사에 의하면 ‘등록금 후불제’의 시행이 가장 잘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호주이다. 호주의 대학생들은 등록금이 없어도 학교를 다니는데 큰 지장이 없다. 연간 학비가 원화로 약 1,000~1,600만원에 달하지만 정부에서 우선 돈을 빌려서 등록금을 낸 뒤 졸업 후 벌어서 갚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2005년부터 확대 시행된 대여 장학금 프로그램 ‘HELP(Higher Education Loan Program)제도’의 덕이다.


이 제도의 방식은 <그림1>에서처럼 ‘HELP’ 제도의 이용을 학교 측에 신청하여 심사를 거치면 수혜대상자로 선정된다. 통상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우선 선발 대상이다. 선정된 학생에게는 정부 기금에서 교육부를 통해 등록금을 대납해주고 대신 학교 측은 학생들의 명단을 국세청에 통보 한다. 이 학생들이 졸업 후 취업을 하면 그때부터 상환이 시작된다.


하지만 연 소득이 원화로 약 2,900만원에 미달하면 상환의무가 없으며, 소득이 일정수준을 넘어갈 때부터 일정 비율(4~8%)만큼 상환을 하면 된다. 이자는 물가상승률만큼의 이율로 붙기 때문이 이자부담도 크지 않은 편이다. 또한 자발적 상환을 하는 경우에는 상환 금액의 10%를 할인해주는 제도도 도입돼 있다.


대학 재정문제가 큰 걸림돌

대학 등록금 후불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재정문제에 관한 관련 부처 간의 이견 대립이다. 지난 2월에 전국교수노동조합에서 대학 등록금 후불제 도입을 시행하자고 언급했고 이에 교육부는 재정적 문제를 두고 부정적 견해를 밝힌 바 있었다. “대학 1년 등록금 총액이 12조 원으로 4년이면 약 50조원이 되는데 정부 재정상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입장을 밝혔다. 또한 지난 2일 공청회에서도 재정경제부측의 일방적인 시행 언급으로 교육부는 난감한 입장을 표했다.


이렇듯 막대한 재정확보가 전제돼야 하는 등록금 후불제는 대학들의 재정 부담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금의 대학들은 등록금 수입이 학교 경영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 지원이 보장되지 않는 한 이 제도는 알맹이 없는 빈 껍질임에 틀림이 없다. 교육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190여개의 사립대 중 42%인 80개교가 10억 이하의 재정을 비축해두고 있는 상태다.


이 제도는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받게 되는 돈인 만큼 상환 가능성을 두고 벌어지는 문제점도 간과할 수 없다. 정부가 지나치게 상환 가능성에 매달리다 보면 특정 대학이나 특정 학과(즉 의학전문대학, 로스쿨, MBA 등)에만 혜택이 치우실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되려 이 제도가 필요한 학생들이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소위 교육의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는 제도가 될 것이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재경부, 내년 경제 운용 방향에 포함

재정경제부 측에서는 재원조달, 소득 파악 방법, 상환 방법 등에 대한 충분한 사전 검토와 부처가 협의가 필요한 만큼 해외사례 연구 이후 내년 경제 운용 방향에 포함해 교육부, 기획처 등의 협의를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이 등록금 후불제는 우선 내년 경제운용방향에 포함될 예정이지만 시행 시기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또한 이 제도는 의학전문대학원, 경영전문대학원, 로스쿨 등을 중심으로 우선 도입될 전망이다. 결국 교육과정 이수 후 자금이 회수될 수 있는 영역으로 우선 시행될 예정이다. 이 제도 이용자는 전문교육으로 자신 소득 증가 가능성과 학비 부담 수준 등을 감안해 제도 이용과 전문교육 이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등록금 후불제의 대학 확대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가 없으며 전문 대학원 시행 결과를 지켜 본 후 확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와 별개로 일반 대학과 대학원 대상으로 취급하는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 제도는 계속 유지 발전시킬 예정이다.


하지만 이 논의는 재정경제부 측에서 나온 의견이므로 앞으로 정부와 교육부와 대학부의 시행 방침이 어떻게 될 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본격 실시 앞서, 일부 시범 운영 필요

지금의 상황으로 당장 ‘등록금 후불제’를 도입하는게 무리라는 것이 전문가의 입장이다. 이미 이 제도를 사용하고 있는 다른 선진국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는 사학으로 투입되는 자본의 양이 연방정부와 주정부 및 기업 등 교육 재정을 확보 할 수 있는 다양한 소스가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제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와 맞물려 재정적 확보를 받은 대학은 공개 행정을 통해 투명한 재정 행정을 하고 있다.


행정학과 심광호 교수는 “우선 이 제도가 시행되기에 앞서 시간을 두고 체계적인 계획 하에 시행되어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전 요인 분석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선 교육부나 각 대학의 예산 확보가 충분히 이루어진 후에 당장 등록금 없이도 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대학을 파악하여 일부 과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 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이렇게 시범 운영하는 곳에서는 투입된 자본금이 장기 몇 년 안에 회수 될 수 있는지가 중요하므로 짧게는 4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단계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추가적으로, “각 대학에서 이 제도에 대해 자율적인 행정을 할 수 있도록 제도의 기준이나 방침을 교육부에서 짚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회수 부분에 있어서는 상환 이자율에 대한 상한선과 하한선의 기준을 뚜렷하게 정하여, 이율을 이용해 대학이 자본을 확보하는 일과 상환에 있어 오히려 상환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 능력을 다하지 못해 사회적으로 개인파산신청자의 수가 증가될 수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우리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었던 제도가 되려 우리의 발목을 잡는 제도로 변질되지 않도록 정부와 관련부처, 기업 간의 긴밀한 유기적 네트워크의 구축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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