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존대, 그 두 번째 이야기
한국어의 존대, 그 두 번째 이야기
  • 김영일 초빙교수 (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8.03.11 23:50
  • 호수 1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주에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하겠습니다. 한국어는 1인칭 주어가 있는 문장에 ‘-시-’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나는 학교에 가신다.”처럼 화자가 스스로를 존대하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비스업, 상거래 현장, 콜센 터, 쇼핑몰 게시판 등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이 관찰됩니다.

 (ㄱ)저희 매장은 세일이 안 들어가세요. (ㄴ)이 부분은 저희 쪽에서 처리해 드리기가 어려우세요. (ㄷ)저희 오늘 9시까지 하세요. (ㄹ)저희는 그 제품이 없으세요. (ㅁ)저희 보험은 가입한 그 순간 부터 100세까지 함께하십니다. (ㅂ)저희는 아직 해외 바이어들을 통한 컨테이너나 대량 주문밖에 안 되세요.

  예문 모두 주어가 1인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아니라 ‘저희’가 나타납니다. 따라서 문장 안에 있는 ‘-시-’는 1 인칭 주어를 존대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화자가 속한 단체(조직)를 스스로 낮추면서 ‘-시-’가 결합한 해요체 와 합쇼체를 사용한 것은 대면하는 청자를 존대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눈앞의 청자나 전화기 너머의 청자가 화자에게는 극진하게 존대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됩니다. 문법에 조금 어긋나는 것보다는 청자를 존대하는 것이 화자에게는 더 중요하므로 과감하고 전략적인 사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으)ㄹ게(요)’로 실현되는 약속문은 약속을 수행하는 사람이 화자 자신이기 때문에 “내가 저녁 살게.”처럼 1인칭 주어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시-’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약속문에 2인칭 주어 와 ‘-시-’를 함께 사용하기도 합니다(3인칭 주어도 가능하지만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러한 문장을 간호사, 상담원, 판매원 등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발화에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 역시 언론을 통해 줄곧 잘못된 용법이라 비판받았습니다. 요지는 과거 개그 콘서트에서 지속적으로 사용하면서 오용이 확산되었다는 것과 ‘하실게요’를 ‘하세요’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예문을 보겠습니다.

 (ㄱ)이쪽으로 누우실게요. (ㄴ)세안 먼저 하실게요. (ㄷ)수납부터 하고 오실게요. (ㄹ)목에 힘 빼실게요. (ㅁ)지금 이동 하실게요. (ㅂ)앞에서 결제하실게요.

  약속문은 화자가 어떤 행동을 수행할 것을 청자에게 약속하는 형식입니다. 여기에서 주어 자리에 1인칭 대신 2인칭을 넣고 약속문의 형식 ‘-(으)실게요’는 그대로 유지합니다. 행동을 수행하는 사람이 2인칭 주어(청자)가 되게 하는 것 입니다.

  그런데 ‘하실게요’가 아니라 ‘하세요’ 라고 하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되고 맙니다. 예컨대, “수납부터 하고 오세요.”, “지금 이동하세요.”는 존대해야 할 고객에게 명령(요청)을 하게 되어 청자의 체면을 위협하므로 화자 입장에서는 말하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약속문의 형식 ‘-(으)실게요’를 사용함으로써 화자는 보다 완화된 표현을 할 수 있고 명령이 가진 부담이나 강제성을 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청자에 게는 마치 화자가 나를 위해 무엇인가 해 주는 것처럼 들리게 합니다. 게다가 ‘-시-’가 결합해 있어 청자는 화자에 의해 가장 높은 존대를 받습니다.

  화자들은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접점을 찾고자 약속문의 형식을 빌렸고, 이 또한 청자를 의식한 전략적이고 의도적인 사용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와 문화는 물론, 우리의 삶과 일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