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게시판의 명과 암
익명게시판의 명과 암
  • 현재건 기자, 권미정 기자
  • 승인 2018.04.30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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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교 재학생들의 인터넷 커뮤니티는 크게 ‘유어슈’, ‘에브리타임’, ‘숭실대학교 대나무숲(이하 대나무숲)’ 등이 있다. 그중 가장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커뮤니티는 단연 에브리타임과 대나무숲이다. 에브리타임은 시간표 서비스와 함께 여러 게시판을 운영하는 대학생 어플리케이션으로, 하루 평균 300개 가량의 다양한 글이 활발히 게시된다. 대나무숲 또한 페이스북에서 17,000명가량의 팔로워를 가진 큰 규모의 페이지로, 익명제보를 받아 글을 게시해 운영되고 있다.

  학생들은 에브리타임과 대나무숲을 통해 연애, 취업 그리고 궁금증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학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한 여러 의견을 공유한다. 뿐만 아니라 학내의 불합리한 점이나 부당한 사건들을 해당 커뮤니티를 통해 공론화하기도 한다. 대나무숲은 에브리타임보다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다수의 학생들이 사용하는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그 파급력이 매우 강하다.

  해당 두 커뮤니티의 가장 큰 공통점은 익명성을 기본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에브리타임은 익명 혹은 사용자가 설정한 닉네임으로 커뮤니티를 이용하고, 대나무 숲은 관리자가 익명으로 제보를 받아 페이지에 글을 게시한다. 익명게시판은 익명으로 글이 게시되기 때문에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본지가 24일(화)부터 27일(금)까지 익명게시판 사용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응한 74명의 재학생 중 50명은 “익명으로 자유로운 의사 표출이 가능해 익명게시판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악플이나 각종 혐오 발언, 날조 등이 만연하다는 문제도 발생한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조정문 수석연구원은 “익명게시판에서는 신상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글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의식이 있어 악플 등이 비일비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의 두 얼굴

  익명게시판에서는 개인의 신분을 숨길 수 있어 게시판 사용자는 모두 평등해진다. 그 점에서 ‘익명’이라는 특성으로 기존 위계질서 속에서는 없었던 목소리가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의 ‘갑질’사건 또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를 통해 처음 알려진 사건이다.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 회항’,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에 대한 ‘미투’ 또한 이 익명의 커뮤니티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익명성이 개인의 신분을 숨긴다는 점은 여러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악플’이다. 악플은 에브리타임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본지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과반수 이상이 게시판 내에서 악플을 본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익명’으로 심리적 안정감 느껴

  익명게시판 사용자는 자신의 신상이 드러나지않아 심리적 안정감을 갖는다. ‘익명’이라는 특성으로 얻게 된 심리적 안정감은 게시판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다. 실제 에브리타임에서는 익명이 보장된다는 것을 이유로 현실에서는 밝히기 어려운 자신만의 고민과 어려움을 털어놓는 사례도 많다. 본지 설문조사에 응했던 안모씨는 익명게시판에서 “익명의 힘을 빌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라며 “사람들이 제이야기를 듣고 그들도 익명성을 빌려 제게 도움을 주었고, 끙끙 앓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자신에게 익명게시판은 ‘해결사’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지난 3월에는 “난 고아야”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요보호아동이었다는 사실과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글이 게시됐다. 해당 글에는 “고생했다. 고생한 만큼 앞으로 행복한 일만 가득하기를 바란다.”는 응원의 댓글이 달렸고, 이에 글 작성자는 “생각보다 따뜻한 댓글이 달려서 깜짝 놀랐다. 응원하는 댓글을 읽으니 위로 받는 것 같다”는 글을 추가적으로 게시하기도 했다.
 

  공론화의 장 되기도

  일부 학생들은 익명게시판을 이용해 자신이 학내에서 겪은 부당한 일을 토로하기도 한다. 지난 2월, 새내기 새로 배움터에서 지나친 장기자랑 강요를 받은 신입생들은 익명게시판에서 새내기를 위해 만들어진 새터에서 오히려 새내기만 힘들다”, “선배들이 장기자랑을 직접적으로강요하진 않아도 강압적인 분위기를 생각하면 반강제나 다름없다”는 등의 글을 게시했다. 이에 새내기 새로 배움터를 주관한 인문대 등 일부 단과대 학생회는 해당 글에 줄줄이 사과했고, 장기자랑을 강요하는 새터를 지양하겠다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타인에 대한 비방·욕설 난무해

  익명게시판에는 타인에 대한 비방, 욕설 등 악플이 비일비재하다. 본지 설문조사에서 익명게시판의 악플을 본 74명의 응답자 중 54명은 타인에 대해 모욕, 비방을 하는 악플을 본적이 있다고답했다(설문2 참조). 설문조사에 답한 김 모씨는“익명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지만 익명 뒤에 숨어서 책임지지 못할 말을 일삼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0일(금), 에브리타임 자유게시판에 ‘세월호 사건의 추모를 강요하지 말라’는 여론을 비판하는 글이 게시됐다. 글 작성자는 “세월호 사건은 지금도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되지 않아 음모와 추론만 가득하다”며 “이것이 다른 사건 사고보다도 세월호 사건을 추모해야하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이후 해당 글에는 “말이 되는 소설을 써라. 좌파와 ‘노란리본충(노란리본을 지니고 다니는 이들을 낮잡아 이르는 말)’들이 대학 특례와 특별법을 만든 건 뭐냐”, “음모론은 증거없으면 퍼뜨리는 거 아니다, 좌파XX들아. 글 작성자가 숭실대 다니는 게 쪽팔리다” 등 비난과 욕설 댓글이난무했다.

  익명게시판의 악플에 대해 서울대 심리학과곽금주 교수는 “게시판에 악성 댓글을 다는 것은 자신의 상태나 욕구를 알리고자 하는 과시욕과 사람들의 반응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 하는 관음증의 발현”이라며 “이런 욕구가 좌절되면 익명성에서 오는 분노로 인해 더욱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타인에 대한 비방, 욕설뿐만 아니라 혐오 발언도 종종 발생했다. 익명게시판에서 악플을 본 52명의 응답자 중 48명은 혐오 발언 댓글을 본적이 있다고 답했다(설문2 참조).

  지난 2일(월), 에브리타임 자유게시판에는 “여대생은 걸러야 한다”는 글이 게시됐고 많은 공감을 받았다. 이 글은 비교적 페미니즘 성향이 강한 여대생에게 피해를 볼 수 있으니 남성들이 주의해야한다는 투의 글이었다. 해당 글에는 “폐기물페미(페미니스트) 학생들은 자퇴하고 여대로 가라”, “숭실대 남자가 여자들을 가만히 놔두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라”며 글 작성자를 옹호하는 댓글이 달렸다. 반면 글 작성자를 비판하는 댓글에는 “네다페(‘네, 다음 페미니스트’의 줄임말)”,“꼴페미(꼴통 페미니스트)”라는 단문의 답글이 달릴 뿐이었다.

  이에 설문조사에 답한 윤 모씨는 “타인에 대한 혐오 발언으로 인해 불쾌함과 피로감을 느낀 적이 많다”고 말했고 박 모씨는 “혐오 스피치가 너무나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익명게시판의 잘못된 정보로 피해를 겪기도 한다. 설문조사에 답한 장 모씨는 “학교홈페이지에 찾고자 하는 정보가 없어 익명게시판에 글을 작성했지만 잘못된 정보의 댓글이 달려 수강신청을 망친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익명게시판 신고제도 유명무실…

  일부 학생들은 악플이나 부적절한 게시글에 대한 신고제도의 실효성이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본지 설문조사에 답한 한 모씨는 “익명게시판의 현재 신고제도에는 허점이 많다”며 “신고제도가 활성화돼야 악플과 여러 분쟁이 줄어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에브리타임의 게시판 이용규칙에 따르면, 일정량의 신고가 누적된 회원은 알림으로 일종의 주의 처분을 받거나 접근 제한 등의 제재가 가해진다. 그러나 알림으로 주의 처분을 받은 회원은 신고를 당했던 댓글이나 게시물을 삭제해 추가적인 신고를 피할 수 있어 쉽사리 접근 제한을 받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모든 신고는 자동신고시스템을 통해 자동으로 처리된다. 이는 게시판의 관리자가 따로 없다는 의미다. 이러한 점을 악용해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는 회원을 임의대로 신고할 수도 있다. 그러나 허위신고에 대한 마땅한 제재는 없으며 에브리타임 홈페이지에 “신고 제도를 악용한 회원은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는 게시판 이용규칙만 명시돼있을 뿐이다.

  심지어는 지난 1월, 단체 회원 다수가 담합해 특정 대학 익명게시판의 일부 회원을 표적으로 삼아 무차별적으로 신고하는 ‘마녀사냥’이 벌어졌지만 이에 대한 제재도 없었다. 이에 에브리타임은 지난 2월부터 회원가입에 ‘학교인증 시스템’을 도입해 부랴부랴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건전한 게시판 문화 만들어야

  타인에 대한 비방과 인신공격성 악플은 당사자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인격을 침해하고 심지어는 자살을 초래하기도 한다. 지난 2008년 악플을 견디지 못한 가수 故최진실씨가 목숨을 끊어 이를 계기로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해 기존의 일반 명예훼손 처벌을 매우 강화한 사이버 명예훼손죄와 인터넷실명제를 규정한 소위 ‘최진실법’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일각에서는 익명게시판에서 악플을 근절하기위한 해결책은 게시판 이용자들에게 있다고 말한다. 조 수석연구원은 “게시물을 올리기 전 한 번 더 생각할 줄도 알고 댓글을 달기 전 한 번 망설일 줄도 알아야 한다”며 “게시판 문화는 이용자들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불량 게시물과 악플에 대해서는 게시판만의 섬세한 설계로 적절한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며 게시판 내의 규제를 강조하기도 했다.

  본지 설문조사에서 다수의 재학생들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익명게시판의 장점을 강조하는 한편 게시판 제도를 신설해 악플을 규제해야한다고 답했다. 고 모씨는 “익명보다 가명으로 개인을 구별할 수 있다면 더 나은 게시판 문화가 조성될 것”이라며 “악플 같은 부작용은 신고제도를 개선해 충분히 자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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