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과 인문학
도서관과 인문학
  • 이상혁 (문예창작 졸)
  • 승인 2018.05.14 02:17
  • 호수 1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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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지난 5월 9일(수)에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에 참여하는 도서관을 390개관 선정했고, 이들 도서관을 거점으로 하여 생활 속 인문 활동을 계속해서 확산시킬 것이라고 한다.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은 2013년 참여 도서관 121개관(참여자 21,977명)으로 시작하여 2017년 403개관(참여자 138,519명)으로 확대, 인문 분야를 대표하는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세대 구분 없이 많은 사람에게 인문의 깊이와 가치에 대해 알릴 수 있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문체부의 도서관 지원 사업이 꾸준한 것은 적극적으로 환영할만한 일이다.
 
  ‘한 나라의 과거를 보고자 한다면 박물관에 가보고, 현재를 보고자 한다면 시장에 가보고, 미래를 보고자 한다면 도서관에 가보라’라는 말이 있다. 도서관이 단순히 책의 저장고가 아니라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러 시대 사상의 정수를 한데 모아놓은 공간이며 문화를 견인하는 동력을 만들어내는 지식정보의 용광로와도 같은 역할을 하여 나온 말일 것이다. 사실 우리가 오늘날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은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생겨난 개념이다. 고대부터 절대왕정 시대에 이르기까지 지배계급은 지식정보를 독점했고 이를 결코 일반 대중과 나누지 않았다.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남다른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책에 있는 지식은 이를 이해하고 전하는 사람 자체가 적으니 사람들 사이로 널리 퍼질 수가 없었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일반인들, 즉 문맹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접할 수 있는 정보란 오직 구전(口傳)을 통해 전해들은 것 외에는 없었으며 이마저도 자신이나 자기가 속한 공동체 구성원들이 기억에 한계가 있으니 변변치 못한 수준과 총량에 머물렀다. 글을 모른다 하여 어찌 자기만의 사유가 없고 세상에 대한 탐구심이 없었겠느냐만 이를 후대에 전할 길도 남과 공유할 방법도 없었으니 아무리 가치 있는 생각을 했다한들 보완·발전시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과거 조선의 학술기관인 집현전이나 규장각은 유교 경서를 비롯한 각종 문헌의 편찬과 보존이라는 국가사업을 수행하는 왕립기관이었지 현대의 도서관이라는 개념에 부합하지 않았다. 책이 있는 장소이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관료(다시 말해 왕이 인정한 사람)가 아니면 출입 자체가 어려운 기관이었다. 이는 서양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서관에 출입할 수 있는 이들은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왕에게 봉사하는 귀족이나 사제 같은 특별계층이었다. 이성을 통해 사회의 무지를 타파하고 현실을 개혁해나갈 것을 촉구하는 사상인 계몽주의의 시대를 거친 후에야 도서관은 비로소 선택받은 소수가 아니라 모두에게 열려있는 지식의 전당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일련의 의미에서 도서관을 인권의 발전을 증거하는 기념비적 장소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오늘날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의 발달과 보급으로 이룩된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지식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의 위상 때문에 지식의 전당인 도서관이 이전보다 많이 힘을 잃은 것이 사실이다. 기존에 출간된 서적들의 전자화는 물론 애초에 출판 자체를 e-북으로 내고 이를 판매·대여해주는 것도 일상화되었다보니 더 이상 도서관의 장서 보유량이 절대적인 의미를 갖지도 못한다. 허나 도서관은 지식의 수용자이자 창조자이기도한 우리를 위해 사색의 장소와 교류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곳으로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 여기가 아닌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삶(人)의 무늬(文)를 헤아리고자 하는 이에게 도서관은 언제나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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