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를 통틀어 국제적으로 논란이 된 문화예술 이슈를 꼽아보자면, 지난 10월 영국에서 발생한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 파쇄사건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풍선과 소녀> 파쇄사건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세계미술시장 거래의 주 무대라고도 할 수 있는 영국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에서 스스로를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칭하는 뱅크시의 작품이 경매로 나왔다. <풍선과 소녀>라는 제목 그대로, 어린 소녀가 손에 쥔 빨간 풍선을 놓쳐버리는 모습이 뱅크시가 즐겨 사용하는 스텐실 기법으로 그래피티된 작품이었다. <풍선과 소녀>는 경매를 거쳐 104만 파운드(한화 약 15억 4천만 원)에 낙찰되었는데 낙찰된 순간 경매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를 경악하게 만든 광경이 펼쳐졌다. <풍선과 소녀>의 그림이 낙찰이 결정되자마자 파쇄 장치가 보이지 않게 설치되어 있던 액자 아래로 죽 흘러내리면서 파쇄되어버린 것이다. 이 파쇄과정은 중간 즈음까지 그림이 갈래갈래 찢어버리고 나서야 멈췄다. 경매장 분위기가 어수선한 사이 얼굴을 숨긴 남자가 경매장을 빠져나갔는데 이 남자가 원격조종장치로 파쇄 장치를 가동한 뱅크시 본인이라고 추정된다. <풍선과 소녀> 파쇄사건은 발생 이후 영국 언론은 물론 국제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경매 주최인 소더비 측은 작품 훼손의 범인을 색출하겠다고 나섰는데, 그럴 것도 없이 사건 발생 다음날 뱅크시가 파쇄사건이 자신의 소행임을 알리는 동영상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뱅크시는 <풍선과 소녀>가 경매에 올라갈 것을 알게 되고 나서 파쇄 장치를 액자에 남몰래 설치해뒀다고 말했다. 뱅크시가 올린 동영상에는 경매가 열리기 몇 개월 전에 액자 뒷면에 파쇄 장치를 설치하는 순간부터 경매장에서 작품이 파쇄 되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담겨 있었다.

  뱅크시가 <풍선과 소녀>의 파쇄를 감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가의 변덕에 따른 기행일까. 아니, 예술 작품에 대해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않고 별다른 관심도 없지만, 예술작품을 ‘투자 가치가 있는 상품’으로만 보고 막대한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었을 것이다(그런데 이마저도 뱅크시의 의도대로인지는 모르겠으나 <풍선과 소녀>는 파쇄 되고 나서도 본래 낙찰가가 그대로 확정, 구매자에게 인도되었다. 외신에 의하면 구매자는 경매장에서 탄생한 새로운 행위예술-예술사의 한 조각을 소유하는 것에 만족해했다고 한다). <풍선과 소녀> 파쇄사건에 대해 뱅크시의 팬들은 ‘과연 뱅크시’라고 감탄하는 반면, ‘뱅크시가 자기 작품가를 올리기 위해 기획한 쇼’라고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뱅크시가 ‘예술을 위한 예술 비틀기’를 시도한 것은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뱅크시가 대형 박물관·미술관의 전시 공간에 조악하게 만든 자신의 ‘작품’을 몰래 진열하고 도망갔는데, 관람객은 물론 관리자들도 그게 가짜인 줄 몰랐다는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뱅크시의 <풍선과 소녀> 사건이 과연 ‘예술가의 뜻깊은 퍼포먼스’인지 혹은 ‘자기 몸값 높이기를 위한 쇼’인지 구구절절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전에 없던 방식으로 우리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줬는가’이다. 오늘날 우리가 ‘예술’로 인식하는 매체와 표현 기법은 과거에는 ‘예술’의 범주에 들지 않았던 것이 대부분이다. ‘예술’의 가치와 의미, 영역은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허나 예술이라는 미명을 빌려 단순 기행을 창조행위로 포장하는 가짜 예술가들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풍선과 소녀> 파쇄사건 이후 SNS에 자기 작품의 파괴 인증샷을 올린 ‘자칭 예술가들’이 그 예다. ‘일류’ 예술가와 남의 것을 자기 것인 양 따라 하는 ‘아류’의 차이는 ‘자기 것’이 있느냐 없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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