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마치 거리는 고베의 활기참을 잘 보여주는 상점 아케이드다.
모토마치 거리는 고베의 활기참을 잘 보여주는 상점 아케이드다.

  고베는 일본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잘 알려진 후쿠오카나 교토가 더 큰 도시처럼 느껴지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베의 활기참을 직접 경험하고 온 후에는 이런 사실에 대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아직도 고베는 대지진으로 기억된다. 1995년 1월 17일에 발생한 진도 7.2의 강진으로 무려 6천 3백여 명이 사망했다. 자연 재해 앞에서 인간이 자랑하는 과학기술의 견고함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이 사건을 보고 절감했다. 고베의 아름다움은 잊혀지고 ‘대지진’은 도시의 브랜드가 된 것 같았다. 일본 제3의 무역항이라는 것도, 개항기(開港期) 때 200여 채의 외국인 건물이 있었던 관광명소 ‘이진칸가이(異人館街)’도 모두 기억의 뒤편으로 묻혔다. 일본 여행을 좋아하는 나조차도 고베를 ‘여행 리스트’에 올린 적이 한번도 없었으니까. 

  2007년, 고베의 참사가 발생한 지 12년이 되는 해였다. 오사카에 사는 친한 일본 친구를 만나기 위해 ‘오사카’에 갔다. 오사카는 몇 번을 가도 살 것도 많고 볼 것도 많아 이번에도 ‘오사카에서만’ 있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친구의 제안으로 ‘특급 열차로 1시간이면’ 된다는 고베로 이동하게 되었다. 여정이 바뀌는 일은 흔한 일이지만 이렇게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아니 약간 꺼림칙한 곳으로 가게 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나는 고베를 전혀 준비하지 않고 방문한 첫 번째 여행 도시로 기록했다. 
 
  에도시대부터 번성하였던 ‘모토마치(元町) 거리’는 주말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간사이(關西) 지방 사람들이 낙천적인 것은 이미 오사카 사람들을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표정에서 지진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오히려 다른 도시들보다 활기찼다. 일본의 다른 도시에도 이런 식의 상점 아케이드는 많았지만 모토마치는 왠지 ‘이국적인 냄새’가 많이 풍기는 듯 했다. ‘고베규’로 불리는 일본 최고의 소고기는 오사카에서도 몇 번 맛을 봐서인지 별로 관심이 없어진 터라 일본의 3대 차이나타운이라는 ‘난킨마치(南京町)’로 이동했다.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 비해 그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고베를 더욱 활기차게 만드는 것은 역시 붉은 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중국 거리인 듯싶다. 배타적인 일본에 차이나타운이 세 개씩이나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한국과 비교해보는 나. 
 
  고베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기타노이진칸(北異人館)지구’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1900년대 초반 외국인들은 공관(公館)을 짓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덴마크,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공관이나 사저(私邸)가 각 나라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인테리어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언덕 위에 집을 지은 유럽인들은 이곳에 정착하여 근대화되는 일본을 어떤 눈을 바라다보았을지 잘 상상은 가지 않았지만 이진칸 지구를 휘감는 고베의 바람은 유럽풍의 낭만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자연재해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의 도전 정신과 외국의 것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오픈 마인드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고베 여행을 권한다. 때로는 의도되지 않은 여행이 큰 감흥과 즐거움을 줄 때가 있음을 고베는 멋지게 보여주었다. 정작 고베에서는 맛보지 못한 고베규를 즐기기 위해 이번 겨울에는 이 항구 도시로 여행을 떠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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