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쯤 나는 내 친구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이를 친오빠에게 알릴 때 ‘수치스럽다’는 말을 인용했다. 오빠는 왜 내가 ‘수치’스러운 느낌을 느끼냐며 어떤 책을 제본한 종이를 건네주었다. <당신은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라는 책의 한 부분인, ‘이 여자들을 보라’라는 제목을 가진 에세이 형식의 글이었다. 나는 ‘왜 내가 느낀 수치심을 알아주지 못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도 글을 읽어나갔고, 노골적이지만 속 시원한 마음을 느끼게 해준 부분을 꼽아 이야기하고 싶다.


  ‘강간 따위는 아무것도 아냐!’라고 이야기하는 ‘비르지니 데팡트’의 강간이론에 대한 것이다. 비르지니는 미성년자에게 강간을 당한 피해자이다. 그녀는 본인의 경험과 연관해 많은 피해 여성들이 보이는 태도를 언급한다. “강간을 당한 후 용납되는 유일한 태도는 폭력을 자신에게로 되돌린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때 조금은 더 저항해 볼 걸, 그 상황을 아예 피해 볼 걸이라며 자신을 자책하고, 그 이미지가 죄의식과 수치심을 자극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이 본인의 피해사실을 ‘수치스럽다’라고 느낄 필요가 없다. 수치스럽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느낌’이 있다는 뜻이다. 본인이 이런 상황에서 어떠한 잘못을 하지 않았다면 왜 수치스러움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강간은 그저 폭력일 뿐이다. 자기혐오와 침묵에서 벗어나 강간을 씻을 수 있는 폭력으로, 나을 수 있는 고통으로 다시 쓸 수 있는 여성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짧은 글을 통해 피해자들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스스로 ‘수치스럽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을 약자로 인정하며 동정을 바라는 것과 같다. 오히려 가해자들이 잘못을 부끄러워 해야 하지 않을까? 성폭력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것이다’라는 것이 아닌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물론 가해자들을 처벌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동일한 피해를 당한 다른 이들이 같이 목소리를 내주지 않는다면. 하지만 그 폭풍 가운데서도 스스로를 꺾을 필요가 없다. 더 꿋꿋하고 당당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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