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와 맹자(孟子)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고사(古事)에 대해서는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란, 유교의 대사상가 중 하나인 맹자의 어머니가 어린 맹자가 훌륭하게 자라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세 번 이사한 일을 말하며, 전한 때의 학자 유향(劉向)이 지은 열녀전<列女傳>에 실려 있는 것이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단, <열녀전>은 맹자 사후 수백 년 뒤에 엮인 것으로, 맹자 사후부터 <열녀전>이 쓰여지기 전까지는 비슷한 일화가 다른 기록에 소개된 바 없다는 점을 들어 ‘맹모삼천지교’ 자체를 유향 개인의 창작물로 보는 연구자들도 있다). 맹자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묘지 근처에 살며 아들 맹자를 키웠는데 어린 맹자가 장사를 지내면서 곡을 하는 흉내를 내었기에, 시 전 근처로 이사를 했다. 그랬더니 어린 맹자가 이번에는 상인들이 으레 그러하듯 물건을 사고 팔며 흥정하는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맹자의 어머니는 시전 역시 어린 맹자에게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니라고 판단하여, 또다시 서당 근처로 이사를 했는데 이곳에 와서는 어린 맹자가 옛 성현의 가르침을 읊고, 유생의 몸가짐과 예의범절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이에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이야말로 어린 맹자를 키우기 좋은 곳이라 생각하고 거처를 정했다고 전해진다. 이 고사는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의 모정, 수천 년에도 사람들은 이미 교육에는 환경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는 사실 등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맹자의 어머니는 맹모삼천지교(孟母 三遷之敎) 외에도 또 하나의 유명한 고사를 후대에 남겨주었다. 대사상가인 맹자 역시 젊은 시절에는 한 사람의 평범 한 학생이었을 것이다. 집 떠나와 학문을 수행하던 도중, 젊은 맹자는 문득 ‘그냥 다 그만둬버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젊은 맹자는 자신이 집 떠나온 지가 오래라 집에 돌아가기만 하면 어머니가 자신을 반겨줄 것이라 믿고 무작정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에 돌아와 집에 들어가 보니 맹자의 어머니는 베를 짜고 있었다. 그런데 베를 짜던 맹자의 어머니는 반가운 기색 없이 맹자에게 물었다. 기별도 없이 왜 돌아왔느냐, 학문은 어느 정도 쌓았느냐 라고. 맹자가 학문을 아직 다 마치지 못했다고 대답하자 맹자의 어머니는 애써 짜고 있던 베틀의 날실을 다 끊어버렸다. 이 광경에 놀라는 맹자에게 맹자의 어머니는 ‘학문을 중간에 그만두는 것은 내가 짜고 있던 베의 실을 끊어버림과 같다’라고 말하고 맹자는 이에 부끄러움을 느껴 다시 스승의 가르침을 받으러 돌아간다. 학문에 정진한 맹자는 훗날 유교의 시조인 공자에 버금가는 유학의 대학자로 숭상 받게 된다. 맹모의 어머니가 베를 끊어 맹자 에게 가르침을 준 일을 일컬어 ‘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라 한다.

  어떤 이들은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 之敎)와 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의 고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을 곡해 한다. 소위 ‘좋은 학군’에서 자녀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자녀를 위장 전입시키고 맹모삼천지교를 들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강요받아 정신적 괴로움을 호소하는 자녀에게 맹모단기지교를 들어 ‘중 도에 포기하면 패배하는 거다’라고 가르치는 식이다. 부모의 재력과 정보수집력으로 자녀를 ‘좋은 교육 환경’에서 공부시키는 것이 ‘현대판 맹모’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사의 교훈을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며, 자녀에게 틀에 박힌 공부를 강요하는 것이 ‘맹자(孟子)를 만드는 길’이라 믿는 사람들. 그들의 자녀가 정신적 ‘맹(盲: 소경 맹)자’가 되진 않을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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