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부문 당선작
 

상도동

여기 비탈에 사는 사람들은
간신히 붙박이며 살고

나는 세 들어 사는 일이 처음이다

길손을 괴롭히는 도적이 많아
부디 반드시 살피면서 가라고
걱정이 섞인 옛말은 오늘까지 좋아
자동차가 다니는 고개 위에서
굳이 나는 목덜미를 아파하고 싶고

도적 대신 무해한 짐승이 많아
부끄럼도 없이 들개는 똥을 누고
골목길 싸다니는 고양이도 춘곤
사람들은 저녁 되면 기울어진 몸으로
먹다가 남은 음식 주려고 나온다

들꽃이랑 어울리려 개똥은 구르고
귀신도 장승도 어느덧 친해져서
똑같이 내일을 막막해하면서
성당이나 절에 한 번 나가볼까 고민하는
그런 둘의 다정은 배우고만 싶고

청과에서 삐져나온 알사과 구르는
여기 비탈도 내가 처음이라
기울기를 나한테 자랑하려다
오르는 할머니 꾸짖음에 놀라
덜 익은 퍼런 감도 때구루루한다

힘들면 누구라도 조금 있다 가라고
임자 없는 나무의자 앉아서 쉬는 사람
어두운 발잔등에 살포시 닿도록
비탈은 붉게 긴 능소화를 기르고

미끄러질라 말 한 마디 없이
내민 손을 나는 꼭 붙잡으며
여기 비탈 길게 이어져서는
다 같이 처음 사는 일을 한다

 

시 부문 심사평

  2018년 숭실 문화상 시 부문에 응모작 편수가 예년에 비해 다소 늘어났다는 점만이 아니라 작품의 수준이 고루 향상되었다는 점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였다. 심사를 하면서 놀란 것은 문학을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의 참여가 60%를 상회하였으며, 시적 역량 또한 문학 전공자와 비견할만한 수준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는 시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는 고무적 현상이면서 동시에 문학 전공자들의 분투가 요청되는 하나의 계기라 여겨진다. 그렇지만 아쉬움도 있다. 심사 때마다 늘 지적되는 사항이 젊음의 패기가 부족하다는 것인데 이번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지나친 애상(哀傷)의 노출, 시적 기교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세계와 당당히 대면하는 주체의 응전력이 우선되어야 시가 진일보한다는 사실을 응모자 모두에게 당부하고 싶다.

  응모작 중 최종까지 거론된 작품은 전욱진(언론홍보학과)의 「상도동」, 경민지(불어불문학과)의 「발자국의 생각은 나와 달라서」, 박새옹(철학과)의 「실어증」이다. 세 작품 중 전욱진의 「상도동」을 당선작으로 뽑는데 전혀 이의가 없었다. 상도동의 ‘비탈’에 붙박여 사는 사람들과 그 주변의 친숙한 풍경을 애정이 담긴 섬세한 시선으로 묘사하면서 그 모든 삶의 풍경을 “다 같이 처음 사는 일을 한다”는  진술로 맺음 하는 흐름에 전혀 군더더기가 없어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가작 선정에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 힘겨운 숙고 끝에 경민지의 「발자국의 생각은 나와 달라서」를 가작으로 선정했다. 물러나고 싶지만 물러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청춘의 한 모습을 서정적 필치로 완결성 있게 그려냈다는 점이 선정의 주된 이유였다. 박새옹의 「실어증」은 자신만의 개성과 패기가 분명해 보인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어제는 늘어진 안개를 먹는데/ 속이 쓰려 기절했어요”라는 표현을 해낼 만큼 시적 과감성이 돋보였으나 전체적 흐름이 그러한 표현을 유기적으로 뒷받침해주지 못해 고립된 표현으로 남는다는 점이 매우 아쉬웠다. 박새옹은 선정 유무를 떠나 시에 정진한다면 미래에 훌륭한 시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선정된 작품 외에 김현래(국어국문학과)의 「맥락을 걷다」, 김경수(문예창작전공)의 「천일주화」, 장경동(문예창작전공)의 「이사」, 임건우(국어국문학과)의 「연안」도 심사위원들로 하여금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 작품들이었다. 기교의 강박에서 벗어나 보다 과감한 시도를 주저 없이 실천해 본다면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시의 열정을 보여준 응모자 모두에게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엄경희 교수(국어국문학과)
이찬규 교수(불어불문학과)

 

수상소감

  여전히 나는 씁니다. 이 사실이 가끔은
믿기가 어렵습니다.
  누긋하게 참으며 이어간 기억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등수학, 아침 운동, 클래식 기타, 수
영, 프랑스어….
  나이가 들 때마다 늘어나 이제는 세는
일도 힘듭니다.
  그런데 아직도, 쓰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내가 모르지만 어쩌면 끝없이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한
살이 더 늡니다.
  그때마다 보태어 겨우 내가 되어주던 것들이 흐릿해지는 모습하고 마주
합니다.
  나의 쓰기는 주로 그들과 맞닿아 있는데 사라지는 입장에서 내가 고마울 수도,
미울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모르는 척하며 계속 써야합니다.
  세상에는 나를 입혀야 할 것이 아직 많
습니다.

전욱진(언론홍보·15)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