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티드 베일(The Painted Veil, 2006) - 아내의 아이의 아버지
페인티드 베일(The Painted Veil, 2006) - 아내의 아이의 아버지
  • 이지은 교수 (법학과)
  • 승인 2019.03.11 00:07
  • 호수 1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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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의 세속적이고 경박한 면을 알면서도 깊이 사랑했던 세균학자(윌터)는 아내(키티)의 불륜을 목격하자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 오지로 함께 떠날 것을 제안한다. 키티는 불륜 상대가 그녀와의 결혼을 거부하자 배신감과 수치심에 휩싸여 남편과 함께 떠난다. 죽음이 일상에 스며든 극한의 환경 속에서 키티는 뒤늦게 인생의 의미를 숙고하고 남편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극적인 화해는 없었지만 부부는 상대방을 이전보다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그러던 중 키티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아버지일 가능성에 대해 묻는 남편에게 아내는 괴로움이 가득한 눈으로 대답한다. “모르겠어요.” 


  통상 어머니가 누구인가는 자연스럽게 알 수 있으나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은 쉽지 않다. 위 영화에서처럼 때로는 아이의 어머니도 진실을 알지 못한다. 이 때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일단 아내의 남편이다.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된다(민법 제844조).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안정된 법적 지위를 갖추게 하여 자녀의 복리를 증진하고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남편이 소송으로써 친자임을 부인하지 않으면 아내의 아이와 남편은 영구히 부모자식관계로 살아가게 된다. 요컨대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 영원히 물음표를 달아두는 대신 일단은 남편의 아이로 해 둔 다음 이를 끊을 수 있는 칼자루는 남편에게 쥐어주는 것이다. 이것이 오래전부터 입법자가 선택한 해결책이었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으로 친생친자 관계를 밝혀내는 것이 간단해졌는데도 이처럼 단호하고 견고하게 부자관계를 정리해버리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가령 남편의 아이가 아님이 명백하고 아이의 생부가 아이와의 친자관계를 원하는 상황에서도 남편의 아이라고 못박아 두는 것이 옳은 것인가? 결국 민법 및 관련법령이 개정되었다. 이제는 아내도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고 이혼 후 태어난 아이는 가정법원의 허가로 비교적 간단히 전남편의 친생추정을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가정법원 판례는 친생자 추정이 미치지 않는 범위를 넓히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래 친생추정의 규정은 부성(父性)의 정확한 감별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고 처의 부정행위가 드물었던 시대적 배경 하에서 불확실한 개연성에 기반을 둔 것인데, 과학적 친자감정기술의 발달로 ...(중략)... 법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서울가정법원 2018.10.30.선고 2018르31218 판결).


  불확실한 개연성만 있던 시절, 윌터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영화 속 윌터는 아버지가 누구든 상관없다고 답한다. 그러나 서머셋 모옴의 원작소설에서는 그렇지 않다. 소설 속의 부부는 결국 화합하지 못한다. 키티는 남편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가를 깨달은 후에도 통렬한 반성과 죄의식만을 느낄 뿐 그를 사랑할 수 없다. 응징하려고 데려왔으나 더 성숙하고 아름다워져 가는 아내를 보며 자기혐오와 애정 속에서 쇠약해져 가던 윌터에게 키티의 임신은 치명적인 일격이 되었으리라(뒤이은 윌터의 죽음이 사실은 자살이라는 암시가 있다). 그는 아내를 벌하고 자신을 경멸할 수는 있었으나 누구의 자식인지 모를, 그래서 사랑할 수도 냉대할 수도 없는 자식까지는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랑은 사람의 일이라, 윌터의 죽음에 이르러서도 키티를 단죄하기는 망설여진다. 전염병자의 시신을 치운 오두막에서 부부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생야채를 먹고 있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 모두 그저 딱하기만 하다. 애정이란 방향과 세기가 제각각이며 때로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하여 국가는 남녀간의 내밀한 사사(私事)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간통죄에 대하여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지, 형벌을 통하여 타율적으로 강제될 수 없는 것”(형법 제241조 위헌소원, 2009헌바17)이라는 헌법재판소의 일갈(一喝)은 남녀의 불륜에 대해 법이 원칙적으로 취하는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간통행위의 결과로 아이가 잉태된 경우까지도 법이 팔짱끼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입법자는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무고하고 연약한 새로운 인격의 등장이란 당사자들에게도 그러하거니와 법의 차원에서도 참으로 무거운 문제를 던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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