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의 배경이 되었던 세고비아의 알카사르.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의 배경이 되었던 세고비아의 알카사르.

  여행하는 도시에서 기대하는 것들은 꽤 다른 층위(層位)를 이룬다. 쇼핑, 미술관, 건축물, 와인, 스포츠, 심지어 환락에 이르기까지 특정한 도시를 여행하는 각기 다른 테마와 이유가 있다. 더 나아가 쇼핑 중에서도 가방, 미술관 중에서도 호안 미로 미술관, 건축물 중에서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라는 식으로 세분화 된다. 자신이 의도했던 유무형의 것을 보고 느끼면서 여행의 만족감은 증폭된다. 여행의 만족감은 차곡차곡 마음에 쌓여 있다가 그 도시를 다시 찾게 되는 원동력으로 변한다. 스페인은 여행자에게 이런 원동력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도시가 많은 나라다. 

  세고비아(Segovia)의 토속음식 코치니요 아사도(Cochinillo Asado). 이것이 내가 먹을 오늘의 요리이고 이 도시로 나를 이동시킨 원동력이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맛봤던 소고기 아사도의 감동은 또 다른 종류의 아사도가 있는 도시로 나를 내몬 것이다. 코치니요 아사도는 아직 젖을 떼지 않은 새끼 돼지로 만드는 요리인데, 세고비아가 원조(元祖)다. 한 때 이베리아 반도를 장악했던 이슬람 세력과 어디를 가도 불청객 신세였던 유대인을 구별해내기 위해서 고안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무슬림과 유대인을 음식을 통해서 골라내었다는 것이 되는데 음식의 탄생 이유가 좀 꺼림칙했다. 더구나 생후 21일 이전의 ‘아기’ 돼지를 요리해 먹는다는 작은 ‘죄책감’마저 몰려 왔다. 그러나 스페인 레드와인과 함께 제공되는 이 토속음식의 ‘우아한’ 맛은 꺼림칙함과 죄책감을 한꺼번에 잠재운다. 인간의 혀는 언제나 간사하다.  

  세고비아를 더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백설공주의 성’이라고 불리는 알카사르(Alcázar)다. 알카사르는 13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축조된 스페인의 건축물을 말하는 것이라서 세고비아에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백설공주>가 세고비아의 알카사르를 모델로 했다고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레고블록을 쌓아 만든 것처럼 보이는 고깔모자 형태의 뾰족한 둥근 탑이 동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많은 사람들이 세고비아의 랜드마크로 아소게호(Azoguejo) 광장을 가로지르는 로마 수도교(Acueducto Romana)를 꼽는데 나는 왜 음식과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성을 더 좋아하는 것인지. 사람의 취향과 특성은 여행을 통해서 발견된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세고비아는 ‘승리의 땅’이라는 뜻이다. 로마의 군대는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고 식민지를 건설했는데 이 도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세고비아라는 이름이 끊임없는 로마군의 승리를 자축하는 의미로 지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세고비아라는 이름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통기타’ 브랜드였다. 중학교 때 기타를 사기 위해 용돈을 모았던 기억도 새롭지만, 내가 지금 여행하고 있는 이 도시 세고비아가 그토록 동경했던 한국의 ‘세고비아 기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더 재미있다. 물론 안달루시아 지방의 리나레스(Linares)에서 태어난 기타연주의 거장 안드레스 세고비아가 있었음은 훨씬 나중에 알았지만. 

  와인과 곁들여 먹은 토속음식과 아름다운 공주가 등장하는 동화의 이미지는 지금은 곁에 있어도 치지 않는 기타의 추억과 함께 나를 세고비아에서 늦게까지 떠나지 못하게 했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