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셰프(Chef, 2014) - 아이의 면접교섭권
아메리칸 셰프(Chef, 2014) - 아이의 면접교섭권
  • 이지은 교수 (법학과)
  • 승인 2019.05.27 07:06
  • 호수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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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고 재미있는 것이 널려 있고 얼마든지 손댈 수 있는 세상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과 못 하게 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아 부모 노릇이 힘들다. 그중의 최고봉은 유튜브와 게임의 광활한 세계가 펼쳐지는 인터넷, 특히 스마트폰과의 싸움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번만”과 “안돼”의 지겨운 줄다리기를 하다 보면, 고된 일과의 끝에 사탕이나 통닭을 사들고 와서 그 귀물(貴物)을 맛보는 자식을 흐뭇이 볼 수 있었던 옛날 부모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싶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요리사(칼)의 아들 퍼시는 그런 점에서 놀라운 아이다. 인터넷의 생리를 이미 파악하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으면서도 거기 매몰되지 않는다. 트위터로 망한 아빠를 다시 트위터로 흥하게 만드는 것도 아들이다. 그의 관심 대상은 아빠이며 그가 원하는 것은 아빠의 일을 배우는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칼)은 본인을 “돈 없고 늙은 이혼남에 거지 같은 아파트에” 산다고 비하하지만 사실은 지나치게 운이 좋다. 여신 같은 외모의 전처와 애인, 태세 전환하는 요리 비평가도 그의 행운이지만 무엇보다도 비현실적인 행운은 그의 아들(퍼시)이다. 그림 같은 엄마와 집을 놔두고 트럭에서 일하는 것이 행복한 아들, 스마트폰은 연락·촬영·홍보 용도로만 사용하고 종일 요리와 청소를 돕는 열 살짜리라니! 같은 나이의 아들을 둔 엄마로서 말하자면, 칼의 아들은 행운 정도가 아니라 판타지다.

  칼의 아들 퍼시는 2주에 한 번 주말을 아빠와 보내기로 되어있는데, 그 밖에 아빠와 함께 지낼 약속을 할 때는 항상 엄마의 동의를 받는다. 퍼시의 부모는 이혼하였으며 현재 엄마가 퍼시를 양육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혼으로 자녀를 직접 양육하지 못하게 된 부모가 자녀를 만나거나 편지·전화 등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면접교섭권이라고 한다(민법 제837조의2). 본래 면접교섭권은 부모의 권리로 인식되었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천륜에서 인정되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권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아빠인 칼보다 퍼시가 훨씬 간절하게 아빠와의 시간을 원한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기 때문에, 아빠인 칼은 아들과의 만남을 무슨 과제를 해내듯 수행한다. 새 직장을 찾는 바쁜 시간에 사춘기 아들을 데려와 지내는 것은 힘겨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다시 함께 살기를 원하는 아이의 간절한 소망을 마주하는 것도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부자(父子)의 만남은 계속되어야 한다. 면접교섭권은 아이의 권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부의 공동생활을 종료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성인인 부모의 선택이겠지만 일상에서 갑자기 엄마 또는 아빠의 빈 자리가 생기는 것은 어린 자녀에게 극복하기 어려운 공백일 것이다. 그래서 면접교섭권은 미성년 자녀의 복리 실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2007년도에는 민법상 면접교섭권의 주체를 자녀에까지 확대하였고 2016년의 개정을 통해 아이의 조부모에게도 면접교섭권이 인정되었다. 이혼은 법적으로 부부 간 혼인관계의 종료일 뿐 아이의 종래 친족관계는 그대로 존속하므로 면접교섭권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혼 후에도 이모, 고모, 삼촌 등 자녀와의 사이에 이미 유대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친족과의 면접교섭을 통해 자녀의 인격 성장과 사회화 과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기여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혼하는 부부의 상당수가 미성년 자녀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혼 후 비양육친, 즉 자녀를 직접 키우지 않는 부모와 미성년 자녀의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 부부가 각자의 삶에 충실하기 위해서 만나지 않는 경우, 또는 혼인 기간 중 누적된 악감정으로 인해 면접교섭에 비협조적인 경우, 자녀가 그러한 영향으로 만남을 기피하는 경우 등 여러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가 면접교섭권을 행사하기보다 포기하는 것이 현실이기에, 이 영화에서 이혼한 부부가 서로 적대하거나 기피하지 않고 아이와의 만남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혼가정을 소위 ‘결손가정’ 등 비정상의 범주에서 부각시키기보다 이혼 후에도 자녀와 부모가 일상적으로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재결합을 암시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어쩐지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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