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 회의(베트남, 2017)사진: 뉴시스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 회의(베트남, 2017) / 사진: 뉴시스

  2019년의 여름은 아베 정권의 한국 공격으로 뜨거운 공방이 진행 중이다. 한국의 시민들은 자발적 불매 운동, 여행 자제 등을 통해 이에 맞섰다. 이러한 일은 이미 21세기 시작부터 있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및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지칭되는 역사 전쟁이 있었다. 20세기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얼룩졌던 과거를 극복하고 새천년을 맞이하려는 아침은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이분법적 배타주의를 극복하고 우리들의 동아시아를 만드는 것이다.

  유럽에서의 화해에는 독일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자신들이 침략했던 프랑스, 폴란드 등과 앞장서서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고 진심으로 사죄하였다. 빌리 브란트 수상이 바르샤바의 유태인 집단 거주지였던 게토지역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은 냉랭한 가슴에 훈기를 돌게 했다.

  동아시아 화해는 제국주의 일본의 후예인 일본이 나서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역주행을 계속하며 치유를 어렵게 하고 있다. 1980년대 말 이후 버블붕괴에 따른 일본 경제와 자민당 정권이 몰락하였다. 놀란 보수 우익들은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면서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고자 하였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부정, 역사교과서의 왜곡, 야스쿠니 참배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뒤에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이 있기 때문에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피해자 중심으로 위로와 배상을 촉구함과 함께 피해자들도 화해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한국 정부도 해결의 주체로서 나서야 한다. 이런 화해 노력을 통해 갖게 되는 도덕적 품격, 국제 사회의 지지, 자부심 등은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다. 일본으로부터의 물질적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진정한 사죄를 요구한 황금주, 김복동 할머니들이 존경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화해의 길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아베 정권의 폭거에 대한 저항은 비단 한국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많은 양심세력들은 한국 사회가 나서기 이전부터 강제 동원 피해 문제를 밝히려 노력하였고, 이들의 재판을 지원하였다. 그들은 일본에서 일고 있는 혐한 시위에 적극 저항하고 있으며, 아베 정권의 조치와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비판하며, 동아시아와 함께 평화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아베와 일본을 동일시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얼마 전 서울의 한 구청이 ‘NO JAPAN, BOYCOTT’을 외쳤을 때 시민들이 보여준 질타는 성숙한 우리의 모습이 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들과 함께 닫힌 국가의 틀에서 열린 세계로 호흡할 때 보편적 세계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고 꼰대들의 것이 아닌 우리들의 동아시아를 건설할 수 있다. 동아시아는 유럽 사회 못지않게 고대 이래 많은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 역사적 연원을 갖는 정체성부터 최근에는 △음식문화 △가요 △영상 △애니메이션 △스포츠 등 각종 영역에서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문화의 공감대에서 시작하여 생활과 역사, 나아가 정치, 경제의 분야까지 상호 교류와 협력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의 동아시아를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평화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우리와 동아시아를 알아가는 글을 몇 차례 싣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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