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사실 공표, 인권 보장에 중점 두기로
피의 사실 공표, 인권 보장에 중점 두기로
  • 박현철 기자
  • 승인 2019.11.04 00:09
  • 호수 1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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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법무부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에서 검찰이 피의 사실을 공표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수사 기관이 수사 중 알게 된 피의사실을 재판 전 외부에 공표하는 행위는 형법 제126조에 따라 금지되고 있으며, 동 조항에 따르면 피의 사실 공표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처분하게 돼 있다.

  피의 사실 공표 조항은 헌법에 명시돼 있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구체화하는 규정으로, 입증되지 않은 피의 사실 공표로 부당한 피의자의 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제정됐다. 그러나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검찰과 경찰은 법무부 훈령(상급 관청에서 하급 관청을 지휘·감독하기 위한 명령)이나 경찰청 훈령에 근거해 기소 전 피의 사실을 공표할 수 있다.

  그간 검찰은 법무부 훈령인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에 따라 △사건관계인에 대해 중대한 오보·추측성 보도를 방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 △범죄로 인한 피해의 급속한 확산이 우려되는 경우 △범인의 검거나 중요한 증거 발견을 위한 정보 제공 같이 국민들의 협조가 필수적인 경우 등 일부 예외를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사건 내용을 제한적으로 공개해왔다. 또한 경찰도 경찰청 훈령인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에 따라 원칙적으로는 수사 내용 공표를 금지하지만, 서면이나 브리핑, 인터뷰를 통해 수사 내용을 알릴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피의 사실 공표죄는 사실상 효력을 잃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지난 8월까지 접수된 피의 사실 공표죄 관련 사건은 총 317건이지만 모두 기소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법을 집행하는 수사 기관들이 정작 자신들을 처벌하는 조항에 대해서는 면책특권을 부여하는 ‘제 식구 감싸기’ 전형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지난 9월 18일(수) 대한변호사협회와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 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수사 기관의 피의 사실 공표 문제를 두고 “상위 법령의 제·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됐다. 

  이에 대해 지난달 30일(수) 법무부가 피의 사실 공표죄 강화를 위해 수사공보준칙을 개정했다. 법무부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망신주기식 수사’, ‘여론 재판’ 등을 통해 법원 재판 전에 사실상 범죄자로 낙인찍혀 인권이 침해되고, 형법상 피의 사실 공표죄가 사문화되고 있다는 국회와 사회 각계각층 비판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기존 수사공보준칙과 동일하게 예외적인 피의 사실 및 수사 상황 공개를 허용한다. 하지만 공개가 허용되는 경우에도 수사와 공소유지에 관여하지 않는 전문공보관이 공보를 담당하며, 공보자료 배포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을 규정했다. 또한 전문공보관이 아닌 검사나 검찰 수사관은 기자 등 언론기관 종사자와 개별 접촉할 수 없고, 형사사건 내용 언급을 금지하도록 강화됐다. 해당 규정은 오는 12월 1일(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피의 사실 공표죄를 무작정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옲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피의 사실 공표로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추가 범죄 피해를 막는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취지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피의 사실 공표 금지를 이유로 수사 당국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수사 기관이 사건을 은폐하거나 왜곡해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제주지방경찰청은 “사건 설명을 자제하면서 일반에 알려야 예방 가능한 범죄마저 묻히고 있고, 추측성 보도와 오보 등으로 인한 가짜뉴스 문제도 있다”며 “피의 사실과 관련해 명시적인 법적 기준이 마련돼야 국민의 알 권리와 피의자의 인권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윤승영 수사기획과장은 “공개해서 얻을 수 있는 공익이 보호받아야 할 사익보다 현저히 큰 경우에는 피의 사실 공표가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윤 수사기획과장은 △고위공직자나 권력기관의 부정부패처럼 공적 이익이 큰 범죄 △범인을 신속하게 검거하기 위해 국민에게 협조를 구할 필요가 있는 범죄 △국민에게 즉시 알릴 필요가 있는 범죄 등 구체적인 공개대상을 제언했다.

  해외의 경우 별도의 피의 사실 공표죄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피의 사실 공표죄가 없는 대표적인 국가로는 미국과 일본이 있다.

  미국의 경우 수사 기관의 수사 내용 브리핑을 원칙으로 하지만, △피의자의 범죄전력 △진술 △유무죄에 관한 의견 등의 언론공개는 금지하도록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명예훼손죄로 처벌받거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일본도 수사기관의 공표행위로 인해 피의자의 명예가 훼손된 경우엔 명예훼손죄로 처벌하고 있다.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경찰청 민갑룡 청장은 피의 사실 공표를 원천 금지하는 것이 최선의 해법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민 청장은 “수사사건의 내용을 대중에게 어디까지 알려야 하는가는 결국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하는 과제”라며 “다수가 공감하는 일정한 기준을 만들기 위해선 긴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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