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烈士)의 한(恨)이 국제사법재판소 앞에서 맴돌다 헤이그
열사(烈士)의 한(恨)이 국제사법재판소 앞에서 맴돌다 헤이그
  • 정희섭 교수 (글로벌통상학과)
  • 승인 2019.11.25 03:14
  • 호수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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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는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건축물이기도 하다.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는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건축물이기도 하다.

  일본이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결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것이다. 외교권은 국제사회에서 국가를 대표하여 발언하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독립국가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권한이다. 외교권 상실은 국가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을 완전히 잃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 누가 외교권이 없는 국가와 조약을 맺고 협력을 하려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했다. 국사 시간에 밑줄을 그으며 그 이름을 외웠던 이준(李儁), 이상설(李相卨), 이위종(李瑋鍾)이 ‘헤이그 특사’라 불리는 사람이다. 특사는 을사늑약의 부당함과 한국의 주권회복을 국제사회에 호소하려고 했다. 그러나 힘이 없는 국가에게 해외 식민지를 거느린 열강들의 반응은 싸늘함을 넘어 냉대(冷待)에 가까웠다. 특사들의 회의 참석은 외교권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되었고, 일행 중 한명이었던 이준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분사(憤死)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를 지금까지 열사라고 부르고 있다. 내장이 끊어지고 온 머리 위로 피가 역류하는 비분강개(悲憤慷慨)였을 것이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 이런 기분이 들 때가 몇 번 있었다. 어렸을 때는 얼마나 화가 나야 사람이 죽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갱년기 장애를 겪는 나이가 되어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암스테르담을 거쳐 네덜란드 말로는 덴 하그(Den Haag)라고 불리는 헤이그(Hague)에 도착했다. ‘헤이그 특사’라는 말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그런지 역에서 기차표를 예매할 때 ‘덴 하그’라고 발음하는 것이 많이 생소했다. 내가 네덜란드에서도 델프트(Delft)와 더불어 미도(美都)로 알려진 헤이그에 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건물은 꼭 보리라고 다짐했었다. ‘ICJ’라는 약어로도 많이 불리는 국제사법재판소는 1913년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의 지원으로 지어졌다. 토지는 네덜란드 정부가 제공하고, 건물 내의 각종 물품들은 세계 각국의 기증을 받았다. ‘국제사법’을 행하는 장소가 ‘국제협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1907년 헤이그 특사가 묵었던 숙소는 1995년 ‘이준 열사 기념관(Yi Jun Peace Museum)’으로 개관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이준 열사가 강성해진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을 본다면 한을 풀고 편히 잠드실 수 있을는지. 유럽에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라는 생각에 많은 시간이 지나가는 줄도 몰랐다. 1895년 조선에 처음으로 설립된 ‘법관양성소’를 졸업하고 실제로 법조인이 되었던 이준 열사의 혼이 국제사법재판소 앞에서 맴도는 듯 했다. 그의 혼이 국권 상실의 암울했던 기억을 떨쳐 버리고 있을 것 같은 상념에 오랫동안 재판소 건물 주변을 거닐었다.   

  헤이그는 네덜란드 오라녜(Oranje)왕실이 수집한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마우리츠하이스 왕립미술관(Mauritshuis Museum)으로도 유명하다. 얀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는 최고의 인기 작품인데, 이 작품을 보기 위해 개관시간 전부터 긴 줄이 이어진다. 렘브란트, 루벤스, 얀 스텐, 한스 홀바인 2세의 명작들은 결국 내가 헤이그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만들었다. 거장의 미술작품은 도시 안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명소들과는 상관없이 여행자의 스케줄을 붕괴시키는 ‘Schedule Breaker’다. 그리고 나는 청각보다는 시각에 더 많이 반응하는 사람임을 재인식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도시를 여행하면서 음악 때문에 여정이 지체되었던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지만, 미술작품과 건축물의 내부를 감상하느라 계획된 다음 행선지로 떠나지 못했던 일은 꽤 많았다. 인간의 오감 중 청각이 우선일지 시각이 우선일지는 앞으로 남은 나의 여정을 모두 마무리하고 결정해야 할 듯싶다.  
 
  다음 주에 숭대시보에 송고하는 ‘이都저都’ 원고가 이번 학기의 마지막 원고이자, 2010년대의 마지막 원고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하다. 내년은 숫자상으로 2020년대의 시작이 아니던가. 2010년대의 마지막 해인 2019년의 마지막 도시는 어디로 해야 할지 살짝 고민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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