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농의 샘 (Jean De Florette, 1986) - 내 이웃의 땅
마농의 샘 (Jean De Florette, 1986) - 내 이웃의 땅
  • 이지은 교수 (법학과)
  • 승인 2019.11.25 03:08
  • 호수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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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아프리카 어딘가의 어린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다. 층간소음의 주범인 위층 식구를 염려하는 것보다 눈물겨운 사연의 방송화면 위에 뜬 ARS번호를 찍는 것이 훨씬 쉬우니 말이다. 아이들이 태어나 가장 먼저 싸우는 것은 손위 형제자매이고 학교에 들어가면 짝하고 수시로 다툰다. 담과 울타리를 마주 대고 있는 것, 같은 부모의 자식이라는 것,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언뜻 가깝고 다정한 사이를 연상케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물질, 애정, 공간 등의 한정된 자원을 두고 계속 경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불가피한 충돌이 일어나고 때론 앙금이 남는다. 교실에는 선생님이, 집에는 부모가 있어서 당사자의 싸움을 어느 정도 중재하지만 이웃 사이에는 어떻게 될까.

  민법은 땅이나 집을 이웃하는 사람들의 다툼에 대비하여 상린관계(相隣關係)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인접한 부동산의 소유자의 권리를 제한하여 상호간 이용의 조절을 꾀하기 위하여 둔 제도이다. 민법이 소유권의 장()에서 소유권의 한계(1)에 제일 앞자리를 내어주고, 그 내용의 대부분을 상린관계에 할애하고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의미심장하다. 자기 땅에서 드나들 통로가 없을 때 주위의 이웃 땅에 길을 낼 수 있는 권리(민법 제219), 이웃 땅에서 자연히 흘러오는 물을 막지 않을 의무(민법 제221), 이웃의 나무뿌리가 내 땅에 뻗어왔을 때 자를 수 있는 권리(민법 제240) 등이 여기에서 나온다. 그런데 땅의 사용, 담의 축조, 생활방해 등 다양한 내용이 담긴 29개의 조문 중 용수(用水)에 관한 조문이 반이 넘는다. 수도시설이 일반화되기 전, 땅에 의탁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물의 이용이란 땅의 소출을 좌우하고 생명과도 직결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마농의 샘은 바로 이렇게 농사를 짓는 이웃 사이에서 땅과 물로 인해 일어난 비극을 보여준다. 비옥한 이웃땅의 샘을 탐내던 삼촌(세자르)과 조카(위골랭)는 그 땅을 상속받은 곱추()가 아내와 딸(마농)을 데리고 이사오자, 쟝이 농사를 포기하고 땅을 팔게 만들려고 음모를 꾸민다. 도시에 살던 세무사가 책을 보면서 농사를 지으니, 평생을 그 땅에서 살아왔고 흙의 맛까지 볼 줄 아는 농사꾼을 이길 수 없다. 친절한 이웃의 탈을 쓰고는 쟝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뒤에서 비웃고, 메마른 농작물을 만지며 미소 짓는 모습은 섬찟하기까지 하다. 쟝이 마을 사람들과 교류가 있었다면 다른 이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세자르와 위골랭이 쟝의 정보를 (마을사람들에게 반감을 살 것만) 취사선택하여 흘려놓았기에 큰맘 먹고 마을로 나온 쟝의 가족은 싸늘한 시선 속에서 돌아설 수밖에 없다. 계속된 가뭄에 고군분투하던 쟝은 결국 죽음에 이른다.

  쓴 약에 입히는 당의(糖衣)처럼, 악행에 자기합리화를 덧입히면 죄를 삼키는 것이 수월해진다. 세자르는 이 일은 내가 아니라 너, 그리고 가문을 위한 것이라든가 쟝의 가족들도 도시에서 사는 게 더 낫다따위의 말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악인의 결합은 악행에 동력을 더한다. 같은 목적의 두 사람이 서로의 결기(決起)를 부추기며 본래의 목적을 다시 되새기면, 간신히 싹튼 측은지심은 그들의 욕망을 이기지 못한다. 두 사람의 모습이나 욕심의 내용은 특별할 것이 없는데 거기서 비롯된 행동들은 치밀하고 현실적이다. 애초 쟝의 죽음까지 의도한 것은 아니었을 테지만 그의 관이 나가고 미망인으로부터 땅을 사들일 때, 샘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땅값을 후려치는 행동거지를 보면 평범한 사람의 일상 속에 잠재하던 탐욕(貪慾)의 일관성에 놀라게 된다. 이렇게 그들의 음모는 꼼꼼하게 완성되었다.

  마침내 자신들의 것이 된 땅에서 몰래 막아두었던 샘을 파내는 두 사람. 이들이 환호하며 성호경을 욀 때, 그 모습을 본 어린 마농처럼 내 마음도 비명을 지르고 싶다. 이들에게 신()의 존재는 무엇일까. 타인의 간절한 소망과 괴로움에 무감(無感)한 채 한 가지 욕망에만 집요하도록 충실한 인간이 어쩌면 그토록 쉽게 신이 자기편이라고 믿는 것일까. 한 정직한 사람- 속임수라곤 몰랐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못하고 모든 난관을 자기 손과 머리로 극복하고자 했던-이 마지막 순간까지 위로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았기에, 그것이 안타깝고 분해서 속편Manon Des Sources을 보아도 별로 통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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