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귀국 교민 격려 현수막 (자료: 한국일보)
우한 귀국 교민 격려 현수막 (자료: 한국일보)

  3월이 시작되었는데 아직 강좌를 듣는 학생들 얼굴도 보지 못했다. 온라인 수업을 통해 일방적으로 소통할 뿐이다.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감영증-19(이하 코로나19)’ 확산으로 졸업식도 개학식도 없는 해를 맞았다. 이런 와중에 이 감염증으로 세계 경제는 대공황에 견줄만한 침체를 겪고 있다. 그러니 졸업이고 입학이고 기쁨을 만끽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중국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각지에서 아시아인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2월 초 터키를 여행 중이었던 딸의 말에 따르면 가게에서 중국인인줄 알고 입장을 금지하려다가 한국인이라 하니 형제의 나라라며 환영을 했다고 한다. 이제는 한국인들도 피해를 입었다는 보도가 있다.

  우리 대학에는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그 중 중국 국적의 학생이 가장 많다. 3월말 중국의 상황과 유럽, 미국 등지의 상황이 역전되기 했지만 중국이 코로나 발생지이기 때문에 그들의 심정도 우울할 것이다. 다만 중국 국적이라 해서 모든 중국 것을 거부하는 소위 ‘시노포비아(sinophobia)’적 태도는 온당하지 않다.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지적과 해결을 통한 모색 못지않게 그 구성원에 대한 인간적 연민 또한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이 많은 역사적 갈등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이를 도우려는 온정과 배려의 문화가 이를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2011년 일본 동북 대지진 때 한국은 일본과 독도 문제 등으로 심한 갈등을 보이고 있었음에도 성숙한 시민 의식을 보여 주었다.

  중국에는 바이러스가 확산이 지속됨에 따라 사망자가 나타나고 의료진조차 마스크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한국의 민간 단체와 중국 단체를 비롯해 정부에서도 마스크를 중국에 지원하였다. 한국에서도 마스크가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매점 매석 단속까지 하는 상황에서 이뤄진 중국 지원을 비판하는 여론도 있었다. 일부는 몰지각한 정치 세력과 정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중국 상황이 좋아지자 이제는 우리에게 지원이 돌아왔다. 일본의 상황도 오히려 요즈음은 중국의 자매 도시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정부는 우한에 거주하는 교민들을 항공기를 통해 귀국시켰다. 특히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심각하고 통제된 상태에서 교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었을 것임은 당연하다. 정부와 국가는 자국민을 어려운 상황에서 보호할 수 있을 때 존립의 당위성을 가진다. 촛불 집회 역시 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에게 더 이상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판단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세계 각국에 거주하며 살아가는 교민들은 이번 바이러스 사태에 고국에 있는 가족의 안전 확인과 함께 중국 교민 귀국을 통해 정부와 국가의 존재 가치를 깨달았을 것이다.

  귀국 교민들이 임시 격리되는 시설과 관련하여 약간의 불협화음이 있었다. 그들의 불안감과 불안은 당연하다. 정부는 상황이 급박하기는 하였지만 이러한 사실을 미리 상의하고 협력 방안을 모색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 비판받을 만하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은 교민 귀국 당일부터는 그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게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다. 반대 집회 뒤로 보이던 어느 야당의 플래카드는 그런 선한 마음을 이용하는 것이다. 국제 보건 기구의 권고와도 다르게 꼭 ‘우한 폐렴’, ‘우한 코로나’라 불러야 하고, 그렇게 부르지 않는 정부를 비판하는 그 사람들은 정권을 잡을 생각이 없는 정당인가? 그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외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인간에 대한 연민,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본연의 끈이다. 메스컴에는 온통 바이러스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우리도 물론 힘들다. 사람들은 힘들 때 더욱 서로를 부여 잡았다. 그럴 때 더욱 옆에 있는 이들을 생각했다. 가슴으로 그 마음을 새긴 사람들은 머리로 이해가 안되는 것도 가슴으로 보듬어 안을 수 있다. 어려울 때일수록, 동아시아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한 걸음 전진을 위한 2인 3각의 자세를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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