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 중 어느 것을 마실까 짧은 고민도 선택으로 해결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후회를 덜 하는 대안을 기준으로 선택하거나,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정당화하기 쉬운 기준에 맞춰 선택하게 된다. 다만 상대적으로 만족하기 위한 선택을 위해 우리는 행동한다.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는 허버트 사이먼은 ‘제한적 합리성 모델’을 주장했다. 대충 “이만하면 만족한다(good enough)”는 주관적 만족에 이르게 하는 한계를 인정하면서 받아들이는 선택이다. 결국 완벽하진 않지만 가급적 최선의 선택을 원하는 게 인간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 북새통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이런저런 고민 끝에 결국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하고 만족해 온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코로나는 이러한 일상을 바꾸어 놓고 있다. 선택이지만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선택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러한 선택의 박탈은 대학뿐이 아니다. 결혼을 어쩔 수 없이 미루게 되는 경우, 생계의 위협을 받아도 어쩌지 못하는 자영업자의 경우,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선택의 박탈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아졌다. 

  인간이 갖는 생각 속에는 늘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만들려고 하는 변명의 망상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유를 지어내는 능력에있어 인간들은 탁월하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은 우리 삶을 낭패스러운 상황으로 몰고 가면서 이러저러한 선택을 못 하게 만든다. 상황이나 행동에 대한 변명을 만들어낼 이유가 없어졌다. 기대효용의 극대화를 바라는 최적화의 원리로 선택하는 것은 당분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을 하는 상황이지만 억지로 끌려가는 모습은 궁상스럽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이제 마음의 구조와 작동방식이다. 지금 상황에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선택도 사실 대부분 제약이 있다. 그 제약은 인간의 약점에서 오는 제약이었다. 자신의 기호와 판단에 따른 선택의 완벽성을 추구하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선택이 되었나 하는 불안감을 줄이는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지금은 최적을 위하기보다 그리고 남을 의식하기보다 자신의 주관적 욕망의 조절로 인한 효용성이 중요하다. 

  수업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대학의 등록금을 돌려달라는 웃고픈 현실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면 일어났겠는가. 결혼 못하게 된 예비부부들의 인생은 누가 보상하며, 취직준비생의 허탈감, 자영업자의 생계손실은 누구에게서 환불받을 것인가 생각하면 그나마 대학은 등록금 환불이라는 선택환경이 있어 다른 곳보다 다행스럽다. 선택상황이 굳어진 현실 속에서 이제 최대한의 효용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대면 수업의 어려움을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마찬가지로 힘겨움으로 토로한다. 이 상황이 어느 한 곳인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 보다 나은 만족감을 선택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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