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철학자가 감정에 대해서 분석한 글이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은 아무런 의미 없이 발산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향해 있고 그것에는 가치가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감정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뀝니다. 그 감정은 때로는 나를 가리키기도 하고, 때로는 타인을 가리키기도 하고, 또 때로는 사물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감정의 지향성입니다. 그리고 그 지향성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가치가 숨어 있습니다. 이 가치가 얼마나 건강한지에 따라서 개인이나, 그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지 판단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지난 겨울방학 동안 캠퍼스에는 참 많은 감정이 표출되어 나왔습니다. 한 학기 더 비대면으로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불만의 감정도 느껴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대학생활의 첫 발을 내딛는 신입생들의 희망의 감정도 전달되고 있습니다. 지난주는 졸업생들이 학교에 모여 가족들과 사진을 찍고 축하하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 환희의 감정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일 정오가 되면 고용안정을 위해서 싸우면서 숭실인들이 함께 연대해 줄 것을 호소하시는 청소노동자들의 절망의 감정도 표출되고 있습니다.

 

  불만, 희망, 환희, 절망...

 

  이러한 감정들이 가리키는 곳들은 각기 다릅니다. 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나와 내 옆의 누군가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를 찌르는 칼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제 감정이 가리키는 그 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힘과 위로가 되고, 칼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살지만, 나도 모르게 칼이 될 때도 있는 것을 경험하곤 합니다. 또한 다른 이의 감정이 나에게 밀려와서 칼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우리는 참 많이 아파합니다. 결국엔 사람들을 멀리하고 혼자 지내려고 하기도 합니다. 혹은 사람 아닌 다른 대상을 찾아서 나의 감정을 나누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 공동체가 새로운 시작을 앞둔 이 시간에 각각 자신의 감정의 지향을 건강한 가치로 채울 수 있는 그릇을 하나씩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합니다. 굳이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한 감정의 그릇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작고 볼품없어도 괜찮습니다. 그저 깨지지 않을 수 있는 단단한 그릇을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한 번 깨지고 나면 깨진 그릇 은 칼처럼 되어서 다른 이들을 찌르는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로 살기 위한, 그리고 그 ‘나’가 ‘우리’가 되기 위한 건강한 가치들을 담아낼 수 있는 단단한 그릇을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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