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부산에서 트럭으로 운반돼 형제복지원에 도착한 아이들이다.출처 :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1980년대 부산에서 트럭으로 운반돼 형제복지원에 도착한 아이들이다.
출처 :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지난 11일(목) 대법원은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하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검찰이 형제복지원 박인근 전 원장의 무죄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신청한 비상상고를 기각했다. 그러나 비상상고 기각과 별개로 대법원은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가 주도한 대규모 인권 유린’이라고 인정했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시를 계기로 피해자 구제를 위한 사건의 진상규명이 계속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형제복지원은 과거 정부에 의해 운영된 부랑자 강제 수용소다. 형제복지원의 박 전 원장은 지난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자를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노숙자 △장애인 △고아 등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3만 8천 여 명의 무고한 시민을 불법적으로 감금해 △강제 노역 △구타 △성폭행 등을 일삼았다. 형제복지원의 ‘피해자 실태 조사 기록’에 따르면 12년간 목숨을 잃은 사람은 총 513명에 이른다. 이 중 일부 주검은 암매장됐으며, 아직 찾지 못한 시신도 남아있다. 이에 지난 1987년 검찰은 박 전 원장을 특수감금 등의 혐의로 기소했으나 대법원은 정부 명령에 따른 수용이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지난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당시 판결에 위법사항이 있다고 판단해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후 약 3년만인 지난 11일(목)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비상상고의 사유로 정한 ‘그 사건의 심판이 법령을 위반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비상 상고를 기각했다.

  반면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가 주도한 인권 유린 사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안철상 대법관은 “과거 국가 권위주의 체제에서 대규모 인권 유린이 오랜 기간에 걸쳐 행해졌다”며 “해당 사건의 핵심은 헌법의 최고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됐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로 인해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해당 판결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재판에서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준영법률사무소의 박준영 변호사는 “대법원이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며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 사건은 소멸시효가 없으므로 아무리 시간이 지났더라도 배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현대사 전반의 반민주적·반인권적 사건 등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설립된 국가기관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의 활동이 재개될 수 있음을 명시하며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과 명예회복을 위해 과거사위 역할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하려면 피해자의 피해 사실이 먼저 입증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과거사위 정근식 위원장은 “대법원이 형제복지원의 중대한 인권침해를 확인해 준 이상 과거사위 조사가 더욱 중요해졌다”며 “피해자의 아픔에 응답하기 위해 하루빨리 조사 역량을 갖춰 진상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2006년 출범한 1기 과거사위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활동을 종료한 바 있다. 이에 지난해 12월, ‘형제복지원사건피해생존자모임’의 한종선 대표는 2기 과거사위에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실규명 접수를 재신청했다. 한 대표는 “1기 과거사위가 완성하지 못한 진실규명을 요구한다”며 “2기 과거사위는 해당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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